반응형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남해안은 한국문명의 끝이자 일본문명의 시작점이 된다.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지역에서 도작에 올인한 수준은
한반도 중부 이북과 비교하여 현격한 차이가 있지 않을까해서다.
한반도 북-중부 지역에서 도작은
혼합농경 일부로서 전체 농작물 중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높지 않았다고 본다.
반면 한반도 남부에 이르면 쌀의 높은 생산성과 온난한 기후 덕에
도작에의 의존성이 더욱 올라가고,
이러한 경향은 현해탄을 건너 일본열도로 도작이 전개되면서 더욱 강화했다고 본다.
따라서 한반도 남부지역의 도작은 중-북부 지역의 도작과 그 의미를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북부 규슈로 이식된 야요이 초창기 도작촌은
한반도 남부에서 상당히 치밀하게 계획된 이주였을지도 모르겠다.
도작의 생산성에 착안하여 이에 올인한 형태의 정착촌 말이다.
*** previous article ***
반응형
'신동훈의 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요이 정착촌의 논과 밭 (41) | 2024.05.21 |
---|---|
필자는 왜 농경과 동물사육, 사람 이동에 주목하는가 (25) | 2024.05.21 |
필자 블로그 이름의 교체 (22) | 2024.05.20 |
한반도에서 도작이 남하할 때 보는 현상 (27) | 2024.05.20 |
잡곡과 도작이 합쳐져 혼합농경이 탄생한 한반도 서북부 (24) | 2024.05.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