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21)
고향으로 돌아와 우연히 쓰다[回鄕偶書] 첫째 수
[당(唐] 하지장(賀知章, 659~744) / 김영문 選譯評
젊어서 집 떠나
늙어서 돌아오니
고향 말씨 그대론데
귀밑머리 희어졌네
아이들을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고
어디서 오셨어요
웃으며 물어보네
少小離家老大回, 鄕音無改鬢毛衰. 兒童相見不相識, 笑問客從何處來.
(2018.05.04.)
이 시를 지은 하지장은 지금의 중국 저장성(浙江省) 사오싱(紹興) 사람이다. 사오싱은 춘추시대 월(越)나라 회계(會稽)인데 하(夏)나라 우왕(禹王)의 왕릉과 월왕 구천(勾踐)의 유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또 범려(范蠡), 문종(文種), 왕충(王充), 왕희지(王羲之), 지영(智永), 우세남(虞世南), 육유(陸游), 서위(徐渭), 왕양명(王陽明), 유종주(劉宗周), 황종희(黃宗羲), 장학성(章學誠) 등 고대 저명 문인과 추진(秋謹), 차이위안페이(蔡元培), 마인추(馬寅初), 루쉰(魯迅), 저우쭤런(周作人), 저우언라이(周恩來), 주쯔칭(朱自淸), 타오청장(陶成章) 등 근현대 명인이 모두 사오싱 출신이거나 사오싱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작은 땅에서 혁혁한 인물이 줄줄이 배출되었다. 우리나라 지방 소도시인 통영이나 안동이 이에 비견할 만하지 않을까 한다.
이 때문에 사오싱 사람들의 고향 사랑과 자부심은 중국 어느 곳보다 강하다. 그리고 사오싱 사투리는 상하이어를 대표로 하는 오(吳) 방언 계열에 속하지만 상하이어와는 또 다르다. 이전에 나는 사오싱을 여행할 때 젠후(鑑湖: 鏡水) 가를 혼자 걸으며 수려한 풍경을 감상한 적이 있다. 상하이로 돌아가는 차 시간을 깜박하고 있다가 황급히 택시를 타고 터미널로 가자고 했다. 그런데 택시 기사의 발음이 완전히 사오싱 사투리였다. 거의 80~90%를 알아듣지 못했다. 나는 금방 루쉰을 떠올리고 루쉰의 평소 발음도 이 택시 기사와 같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매우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대학에서 표준 현대중국어로 읽은 루쉰의 소설과 산문 발음이 택시 기사 발음과 전혀 연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떤 지역 사람이건 자신이 자란 고향 말씨(鄕音)를 버리기 어렵다. 또 타지에서는 표준어를 쓰다가도 고향으로 돌아가면 고향 말씨를 그대로 쓰기도 한다. 하지장도 장안(長安)에서 벼슬할 때는 관리 사회의 공용어인 관화(官話)를 썼겠지만 귀향해서는 사오싱 말을 썼을 것이다. 이 시는 하지장의 귀향길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인생무상을 바탕에 깔고 있지만 전체 시의 분위기는 하지장의 평소 언행처럼 밝고 발랄하다. 오랜만에 고향을 찾은 사람은 누구나 이런 생소함과 흐뭇함에 맞닥뜨릴 터이다.
*** 김태식 補 ***
같은 하지장 시에 다음이 있어 앞선 시와 연작이 아닌가 한다.
집 떠난지 많은 세월 지나니
요새 아는 이 절반은 죽었네
오직 문앞 흐르는 경호 물만
봄바람 변함없고 물결 그대로네
離別家鄉歲月多, 近來人事半消磨。惟有門前鏡湖水, 春風不改舊時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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