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22)
절구(絶句) 첫째 수
[당(唐)] 두보(杜甫) / 김영문 選譯評
해 긴 날
강산은 아름다워라
봄바람에
화초가 향기롭다
진흙 녹으니
제비 날고
백사장 따뜻해
원앙이 존다
遲日江山麗, 春風花草香. 泥融飛燕子, 砂暖睡鴛鴦.
(2018.05.05)
우리가 잘 아는 문장 작법 중에 ‘두괄식’이란 방법이 있다. 전체 글의 핵심을 맨 앞에 제시한 후 그것을 천천히 풀어나가는 방법이다. ‘두괄식’이란 용어를 시에도 적용할 수 있다면 이 두보의 시도 전형적인 ‘두괄식’에 해당한다. 물론 형식은 기구(起句: 첫째 구)와 승구(承句: 둘째 구), 전구(轉句: 셋째 구)와 결구(結句: 넷째 구)가 대구를 이루고 있지만 내용은 기구 즉 첫째 구가 시의 모든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따라서 이런 시를 번역할 때는 먼저 ‘두괄식’ 표현을 살릴 수 있어야 한다.
“해 긴 날/ 강산은 아름다워라”라고 먼저 한 문장으로 단락을 맺은 것은 그 때문이다. 기구 다음 승구, 전구, 결구에서는 기구에 제시된 ‘해 긴 날 아름다운 강산’을 디테일하게 풀어낸다.
디테일을 음미해보면 봄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봄바람을 따뜻하게 하고, 그 후 화초에 스미고, 땅에 스미고, 제비와 원앙의 몸에 스미고, 마침내 시인의 마음과 붓에까지 스밈을 알 수 있다.
좀 더 쉽게 풀어보면 봄이 되어 해가 오래 비쳐 바람이 따뜻해지고, 이후 봄바람은 화초를 향기롭게 가꾸고 겨우내 얼었던 진흙을 녹인다. 봄 온기에 진흙이 녹자 제비는 집을 짓기 위해 진흙을 입에 물고 나르고, 따뜻한 백사장에는 원앙 한 쌍이 서로 몸을 기댄 채 졸고 있다.
차가운 겨울이 끝나고 새로 맞은 봄의 특성은 무엇인가? 바로 따뜻함이다. 따뜻함은 만물을 생동하게 하는 영양제이고 만인을 살리는 사랑이다. 안록산의 난을 겪으며 두보는 어느 봄날 따뜻함의 행복을 만끽한다.
모든 문학은 ‘구체적 보편’을 지향한다. 문학가 자신이 겪은 구체적 현실을 묘사하여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보편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두보는 ‘시성(詩聖)’이라는 호칭에 어울리는 위대한 시인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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