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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詩 & 漢文&漢文法

후한서 유림열전 조엽(趙曄)과 《오월춘추(吳越春秋)》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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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漢書 卷七十九上·儒林列傳第六十九上


趙曄字長君,會稽山陰人也。少嘗為縣吏,奉檄迎督郵,曄恥於斯役,遂棄車馬去。到犍為資中,詣杜撫受《韓詩》,究竟其術。積二十年,絕問不還,家為發喪制服。撫卒乃歸。州召補從事,不就。舉有道。卒於家。曄著《吳越春秋》、《詩細歷神淵》。蔡邕至會稽,讀《詩細》而歎息,以為長於《論衡》。邕還京師,傳之,學者咸誦習焉。時,山陽張匡,字文通,亦習《韓詩》,作章句。後舉有道,博士徵,不就。卒於家。


조엽(趙曄)은 字가 장군(長君)이며, 회계(會稽) 산음(山陰) 사람이다. 어릴 적에 산음현 관리가 되어 격문을 받들고 독우(督郵)를 영접했으니, 조엽은 이런 일을 수치스럽다 해서 마침내 거마를 타고는 떠났다. 건위(犍為)의 자중(資中)에 이르러 두무(杜撫)를 찾아 《한시(韓詩)》를 배워 그 경술을 궁구하여 깨쳤다. 그런지 20년만에 소식을 끊고 돌아오지 않자 집에서는 죽었다 해서 발상(發喪)하고는 상복을 입었다. 두무가 졸하자 마침내 돌아왔다. 州에서 불러 종사(從事)로 보임하려 했지만 나아가지 않았다. 유도(有道)로 천거됐지만 집에서 죽었다. 조엽은 《오월춘추吳越春秋》와 《시세역신연詩細歷神淵》을 저술했다. 채옹蔡邕이 회계에 이르러 《시세詩細》를 읽고는 감탄하면서 《논형論衡》보다 낫다고 여겼다. 채옹이 경사京師로 돌아와 그것을 전하니 배우는 자들이 모두 외우고 익혔다. 그때 산양(山陽)의 장광(張匡)은 字가 문통(文通)이라 역시 《韓詩》를 익혀 장구章句를 썼다. 나중에 유도(有道)로 천거되어 박사(博士)로 징소되었지만 나아가지 않고 집에서 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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