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유신헌법 철폐 기도회 주도, 1970년대 후반 동일방직사건 대책위원회 위원장, '목요회' 상임대표, 인천 굴업도 핵폐기물처리장 반대 대책위원회 상임대표 등등 그의 경력은 온통 운동으로 점철한다. 당연히 그에 따르는 댓가는 만만치 아니했다.
이런 공로가 인정되어서인지 200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한테서는 몬시뇰이라는 칭호를 받는다. 주교품을 받지 않은 원로 신부한테 교황청이 주는 그 몬시뇰이다.
1932년 충남 공주 교우촌 요골공소 출생인 그는 1948년 서울 용산 소신학교에 들어가면서 사제의 길을 걷고자 했지만 폐결핵으로 그 길을 중단하고는 홍익대 국어국문학과를 마치고는 1963년, 33살에 서울가톨릭신학대에 들어가 69년 사제 서품을 받는다.
인천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초대 위원장,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공동대표.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도 역임했으니, 이 과정에서 친일인명사전을 편찬해 백범 묘소에 바친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민주화운동에 투신하게 된 계기는 1974년, 유신체제를 비판했다 해서 지학순 주교가 구속된 사건이라 한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이때 깃발을 드는데 그는 창립회원으로 참여한다.
그는 활동영역으로 보면 주로 인천지역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종교인이었다. 보통 이런 사회운동에 투철한 종교인은 고유의 사목활동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하기 마련인데, 김 몬시뇰은 지역 선교와 신앙교육과 같은 사목활동도 활발히 병행했다는 평가가 많다.
그런 갖는 간난을 견딘 그도 최근 2년 정도 병마와 싸우다가 마침내 2020년 4월 25일 오전 0시 5분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한편 그의 선종에 문재인 대통령이 애도를 표했다고
덧붙여 정부는 국민훈장을 추서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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