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세한 내용은 앞 현장설명회 자료집을 참조하라
아마도 1925년 을축년대홍수 무렵에 노출되었을 풍납토성 출토 금동허리띠 장식. 1935년 《경성의 하이킹 코스》라는 잡지에 소개됐지만 이후 실물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다. 중국제, 특히 晉代 수입품으로 간주된다.
이건 허리띠 부속품 중 하나인데 그렇다면 허리띠 어떤 부분일까?
앞 사진은 황남대총 북분 금제허리띠다. 동글배기 친 부분이 바로 그것이다.
천마총 금제 허리띠인데 이런 사례들을 통해 혁대 어떤 부분인지 짐작할 것이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경주 쪽샘지구 L17호라고 명명한 무덤에서 찾았다는 이 금동판 조각 2점도 바로 저 부분에 해당한다. 다만 완제품이 아니라 어찌된 셈인지 조각나서 저 모양이다.
본래 모습을 추측하면 이럴 것이라고 한다.
붉은 테두리를 친 부분에 사용했을 부품으로 본단다.
문제는 저들이 분명 완제품으로 들어갔을 터인데 어찌된 셈인지 저것만 달랑 남았다. 도굴 피해를 봐서일까? 아니면 후대 잦은 공사에서 벌어진 산란 과정 때문일까? 아니면 저것만 따로 떼서 넣었을까?
그건 알 수 없다.
이 무덤이 발견된 지점은 쪽샘지구라 해서 첨성대 인근이며 대릉원 바로 옆이다. 지금은 허허벌판이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술집 천지였다.
요 무덤을 팠더니만 이랬다. 보다시피 그 위를 덮었을 봉분은 다 날아가버리고 편편한 상태. 이걸 팠더니만 저렇게 나왔다.
방향 표시등을 보면 화면 바라보는 사람 기준 왼쪽이 서쪽, 오른쪽이 동쪽이다. 구덩이를 두 군데를 팠다. 오른쪽 더 길쭉한 데가 죽은 사람을 묻는 공간이고, 그 반대편 서쪽 지점 반쯤 날아간 방형 구덩이는 토기를 비롯한 이른바 껴묻거리를 집중적으로 넣어주는 공간이다.
시체는 목곽이라 해서 덧널을 쓰고, 그 안쪽에다가 목관이라 해서 진짜 나무로 짠 널을 넣어서 안치했을 것이다.
현황은 이렇다.
내부 모습을 좀 자세히 보면 이렇다.
곳곳에 주칠朱漆이라 해서 붉은색 뼁끼칠을 했다. 이런 붉은뺑키는 분석하면 산화철 아니면 주사朱砂 둘 중 하나인데 이곳은 분석하니 산화철 계통이다. 사상적인 연원은 같다. 주사는 비싸서 못 썼다. 그래서 그 대용으로 싸구려 산화철 뺑끼를 썼다.
그 기능은 액막이 운운했으나, 말도 안 된다. 선약仙藥이다.
훼기毁器라 해서 토기를 부러 깨서 쑤셔박았다. 죽음의 공간임을 표시하는 장치다.
껴묻거리 공간이다. 저 뒤편이 시체가 묻힌 곳이다.
앞서 본 허리띠 부속품 발견지점인데 보다시피 시체 중간 허리가 아니라 발치 부근이다. 원래 자리에서 이탈했음을 암시한다.
앞서 봤다. 생략한다.
제작 방법인데 무시하라.
현재까지 중국제 허리띠가 출토된 상황이다.
이것도 무시하라
이제부터는 이한상 선생 논문을 인용해 중국제 그리고 그 수입품 한반도 출토 내역을 살핀다.
요렇다.
주처라는 사람은 3세기 후반에 죽었다.
4세기를 중심으로 하는 중국 晉나라 무덤에서 나온 허리띠 장식들이다.
이건 북쪽에서 출토된 동시기 것들이다.
이건 앞서 본 것들이다. 일부 중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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