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헌책방에 가 보면 긴장감이 팽팽하다.
물론 제대로 운영되는 헌책방의 경우인데
서울 시내에서도 이름 난 헌책방은 가 보면
수년에서 수십년 험난한 독서계를 버틴 연륜이 있어
정말 쟁쟁한 책들만 책꽂이에 남아 있다.
아무도 안 읽을 거 같은 책은 별로 없다.
그런 책들은 이미 다 폐기되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책이 왜 나왔나 싶은 방만함은 신간서적을 파는 책방에 있다.
앞에서 필자는 20세기 이전 전적의 번역 이야기를 했다.
20세기 이전의 번역은 이렇게 수십년 경쟁에서 살아 남은 전적을 대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20세기 이전에 우리 조상이 남긴 글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고 차별없이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필자가 보기엔 현재 번역이 되어 나오는 글들 중에는 2025년 현재 헌책방에서 새 주인을 기다리는 책들보다도 못한 글들도 있다.
단지 20세기 이전의 글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면죄부를 받아 번역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
번역을 담당하는 분들은 필자가 보기엔 대단한 인재들이다.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남겨 놓아야 하는 고급인력이다.
마땅히 번역은 그럴 만한 글에 대해 이루어져야 할 것 같다.
특히 문집이 필자는 문제라고 보는데
조선시대 문집.
번다하고 번역해봐야 누가 읽을까 싶은 글이 많다고 본다.
문집은 권수에 비해 번역한 후 과연 거기서 대단한 것이 나올까 싶은 글이 상당히 많다고 본다.
이걸 전질을 얼음판에 박 밀듯이 박박 남김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번역하는게 맞는 것일까?
예를 들어 송자대전
송시열이 지었다는 200권이 넘는 이 거질이 한글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번역되어 있다.
이 책-.
누가 봤을까.
필자가 보기엔 전공자들도 본 사람 많지 않을 것이라 본다.
일반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어차피 전공자들은 한글 번역없이도 열독이 되는 분들이니 만큼
송자대전이 꼭 번역될 필요 있었을까.
필자는 가끔 송자대전 번역본을 보는데
이 책이 도대체 왜 번역되어 나왔는지 아직도 이유를 모르겠다.
송자대전 해제를 보면 이 책은 매우 귀중한 자료라는 건데,
필자가 보기엔 이 책은 20세기를 풍미한 대학교수들 은퇴 기념 논총이라던가
열 몇권짜리 누구누구 전집하고 다를 바가 없다.
이런 류의 20세기에 나온 누구누구 전집은
헌책방가면 하나도 볼 수 없다.
모두 경쟁에서 밀려 탈락한 것이다.
송자대전이 20세기 이전에 출판되었다는 이유 하나로
면죄부를 받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20세기 이전 어떤 책들은 헌책방에 꽂힌 책들만큼도 그 경쟁력이 검증이 안 된 책들이다.
특히 가문에서 돌려 보던 문집들은 더더욱 그렇다.
이런 책들이 20세기 중반에 나왔다면
지금은 모두 폐기되어 헌책방에서도 볼 수 없을 것이다.
다만 20세기 이전에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면죄부를 받고 한글 번역과 온라인 검색의 영예까지 누리고 있는 것 아닐까.
헌책방에 꽂혀 아직도 도서로 살아 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생각해 본다면,
망각에서 소환하여 21세기에 부활시키는 작업이라 할 번역 작업은
우리 생각처럼 무차별 번역을 해서는 안 되는 것 아닐까.
거듭 말하지만, 우리 20세기 이전의 한적을 번역해 내는 분들은 아무렇게나 사용해서는 안 되는 인력이다.
꼭 필요한 책을 집중해서 번역하는 게 맞지 않을까.
문집이 무차별 번역되어 나오는 것을 보면, 반갑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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