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探古의 일필휘지

호운湖雲 박주항朴疇恒, 일본 장군을 찬양하는 시를 적다

by taeshik.kim 2022. 12. 25.
반응형

늘 머릿속에 넣어두고있는 주제 중 하나가 잘 알려지지 않은 근대 서화가 연구다. 그중에서도 난초로 당대에 제법 유명했던 수연壽硯 박일헌朴逸憲-호운 박주항 부자에 관해서는 꼭 논문을 써보겠다고 벼르고 자료를 모아보고 있다.

그러다가 우연히 이 글씨 한 폭을 만났다. 박주항이 벌연筏硯이라는 호를 쓰던 시절(1910~20년대?) 글씨인데, 어쩐지 고균古筠 김옥균金玉均 글씨가 떠오르는 서풍書風이다. (맨 뒤 첨부사진) 

쓰기는 제법 능숙하게 써 내려갔는데 내용을 읽어보니 참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한다.


표범은 죽어 가죽을 남긴다는 말 어찌 우연이랴 豹死留皮豈偶然
물이 하늘과 잇닿은 미나토가와에 자취가 남았구나 湊川遺蹟水連天
인생은 유한하나 이름은 끝없으니 人生有限名無盡
구스노키 공의 진실된 충성 만고에 전하리라 楠子誠忠萬古傳



때는 일본 남북조시대, 무사정권 가마쿠라 바쿠후를 멸망시키고 왕정복고를 단행하려는 고다이고 덴노의 최측근 무사가 있었으니 그가 구스노키 마사시게 楠木正成 란 이다.

그는 새로운 무사정권을 세우려는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에 맞서 싸우다가 미나토가와湊川에서 대전투를 벌이고, 중과부적으로 죽고 만다.

 

구스노키 마사시게 남목정성 楠木正成



시간이 흘러 왕정복고(?)가 된 메이지 시대 구스노키는 충신 중 충신으로 평가받고, 군국주의자들의 아이돌이 된다.

그런 구스노키를 찬양하는 시를 호운이 적은 것이다.

글씨를 주문한 이의 요청이었을텐데, 유학적 관점에서 불사이군不事二君한 인물이니 거리낌이 없었을까.

지금의 잣대로는 퍽 불편하지만, 그때로서는 굳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