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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형랑과 화랑세기] (4) 전군殿君의 조건과 예외 모계 혈통이 만드는 사자私子와 사녀私女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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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세기

 
《화랑세기》에 보이는 용어들에 대한 개념 정의는 계속 다듬는 중이다. 특히 친족 관련 용어에 대한 개념 정리는 현재진행형이다. 이번에 다른 전군과 사자 사녀, 그리고 이에서는 다루지 못했지만 사매私妹 같은 개념에 대한 정리는 궁극으로 내성사신內省私臣에 대한 실체를 파헤치는 지름길이라고 나는 본다. 

내성사신은 내가 간단히 언급했지만 이는 忠하는 대상이 王이 아니다. 내성사신은 왕의 모후를 비롯한 왕실 여성들에게 忠하는 臣이다. 公과 私를 엄밀히 구분한 신라의 시스템을 엿보게 한다. 그만큼 전군이며 하는 개념들이 중요하다.

용수와 용춘의 전기가 모두 수록되었을 《전군열기殿君列記》는 그 명칭으로 보아 왕자들 열전이다. 《화랑세기》 전편에 걸쳐 등장하는 전군殿君은 원칙으로는 아버지가 왕인 왕자 중에서도 왕위 계승권에서 탈락하거나, 서자들을 말한다.

적통 왕자 중에서도 왕궁에 그대로 사는 왕자는 갈문왕에 책봉되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출궁出宮하거나, 아버지가 왕위에서 쫓겨나거나 하면 그 격이 한 단계 떨어져 전군이 되었다. 왕들의 서자는 태어날 때 이미 전군이었다. 이것이 전군의 원래 의미다.

지증왕과 연제延帝 부인 사이에는 법흥왕과 입종 갈문왕 말고도 진종眞宗이라는 적통 아들이 한 명 더 있다. 진종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지의 문헌에는 흔적이 남지 않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 활발히 편찬되는 족보 중 경주김씨, 특히 그 한 분파인 강릉김씨 같은 족보에서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이 진종이 《화랑세기》에도 가끔 등장하는데, 그를 전군이라 부른다. 왜 적통 왕자인 그가 전군인가? 큰형 원종原宗이 태자가 되고, 작은형 입종立宗은 갈문왕에 책봉되어 궁중에 머물렀지만, 진종은 어떤 이유로 출궁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본다.

하지만 예외 없는 법칙은 없다. 전군 역시 마찬가지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 11세 풍월주 하종夏宗이다. 그는 아버지가 세종世宗이요 어머니는 미실美室이다.

한데 《화랑세기》는 이런 하종을 전군이라 부른다. 왕의 아들도 아닌 그가 도대체 어떻게 전군일 수 있을까? 정치 역학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그 어머니 미실이 진흥왕 후궁으로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하종은 전군 자격이 없음에도 전군이 되었기에 당연히 내부 반발을 불렀다. 나아가 그의 아버지 세종 역시 원칙으로는 전군이 될 자격이 없었다. 세종은 어머니가 진흥왕 어머니요, 입종 갈문왕비인 지소(只昭)이기는 하지만, 아버지는 입종이 아닌 태종苔宗, 곧 이사부異斯夫였다.

세종은 어머니 기준으로 진흥왕의 동생이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왕이 아니었으므로 전군이 될 자격이 애초에는 없었다. 이런 세종을 무리해서 전군으로 만든 이는 어머니 지소 태후였다.
 

남당 박창화와 그의 윤관 9성에 대한 논문



세종-하종 부자는 그들을 전군으로 만든 주체는 이처럼 달랐다. 아버지 세종은 어머니 지소의 힘을 등에 업고, 아들 하종은 어머니 미실의 강력한 추천으로 각각 전군이 되었다.

하종을 전군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들을 저록한 11세 하종공 전 다음 대목은 그것을 결정적으로 증명한다.

“이때 (하종) 전군이 처음 태어나자 (진흥)제가 크게 기뻐하며 (하종)공을 전군으로 봉하여 전주殿主(미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했다. 전주는 속으로 기쁨을 이기지 못했지만 겉으로는 겸양을 베풀었다. 그때 삼호공三好公이 내질內秩 업무를 관장하고 있었는데 따져 말하기를 ‘사자私子가 전군이 되는 것도 이미 참람한데, 하물며 사자의 아들이겠습니까’ 라고 하니 (진흥)제가 옳다고 여겨 그만두었다.”

먼저 이에서 보이는 용어를 설명해야겠다. 하종의 어머니인 미실을 이 당시 전주殿主라고 하는 까닭은 남편 세종世宗에 견주어 그 세종이 궁궐에 거주하는 공간인 전殿의 안주인이라는 뜻이다.

말하자면 전주는 남편의 칭호인 전군에 대비되는 안방마님 칭호인 것이다. 미실은 남편이 세종이기는 했지만, 진흥왕의 후궁이기도 했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막장드라마요 콩가루 집안이다.

사자私子는 정식 혼인 관계가 아닌 사이에서 난 아들을 말한다. 그에 대비되는 딸은 당연히 사녀私女이니, 실제 《화랑세기》에는 사녀라는 용어도 심심찮게 보인다. 김유신·김흠순·김문희(훗날의 태종무열왕비이자 문무왕 모후) 형제자매의 어머니인 만명萬明은 진평왕의 어머니 만호 태후萬呼太后의 사녀私女라고 했다.

사자와 사녀는 이렇게 본다면 언뜻 적서의 관념으로 본다면 서자庶子라든가 서녀庶女로 취급되었을 법하지만, 첩의 소생들과는 신분이 왕청나게 달라 현격히 높았다.

나아가 정식 혼인 관계에서 태어난 적자나 적녀嫡女와는 또 다른 면모가 있다. 외려 적자나 적녀보다 때로는 더 고귀한 혈통으로 취급된 흔적도 농밀하기 때문이다.

예서 문제는 ‘私’의 기준이다. 누구를 기준으로 그 아들과 딸이 사자 혹은 사녀가 되느냐이다. 이는 해당 자식들의 신분을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말할 것도 없이 ‘私’는 그 부모 중 신분이 더 높은 쪽을 기준으로 한다.

예컨대 신하 A가 아버지, 왕비나 태후 B가 어머니라면, 그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모조리 B의 사자와 사녀가 된다. 《화랑세기》에서 놀라운 점은 오직 여성에게만 사자와 사녀가 성립한다는 점이다.

(2017.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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