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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형랑과 화랑세기] (3) 양자로 즉위한 김춘추 : 생부는 갈문왕, 양부는 대왕大王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4.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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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추가 양자로 즉위하면서 더는 갈문왕이 존재 가치를 상실했다. 이제는 대왕 추봉으로 가야 하는 시점이었다.

 
갈문왕이 종말하고 추봉 대왕이 등장하는 획기를 나는 김춘추 즉위에서 찾는다. 김춘추의 등장은 중국식 예제가 한반도에 착근하는 계기였다.

이런 중국식 대왕 추봉 바람에 갈문왕이 대표하는 소위 고유 신라 추봉 시스템은 도전에 직면했다.

김춘추한테는 생부와 양부가 따로 있었다. 그는 양자로 즉위했다.

화랑세기에 의하면, 용춘은 금륜왕金輪王, 곧 진지왕과 사도思道 사이에서 난 둘째아들로 동부동모同父同母 형이 용수龍樹다.

춘추는 용수가 천명天明 공주에게서 낳은 아들로, 아버지가 죽자 어머니와 함께 작은아버지 용춘에게 가서 자랐다.

용춘은 천명을 아내로 받아들이는 한편 적자嫡子가 없어, 형의 아들인 조카 춘추를 아들로 삼았다. 춘추는 양자養子로 작은아버지에게 입적되었다.

화랑세기에는 명시적인 언급이 없지만, 춘추는 명백히 용춘의 아들로 즉위했다. 법적으로는 춘추는 용춘의 아들인 까닭에 그가 즉위하자마자 대대적인 가문 추숭 작업을 벌인다. 그는 아버지 용춘을 문흥대왕文興大王에 추봉했다.

문제는 생부生父인 용수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생부를 가만히 둘 수는 없는 법.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춘추는 즉위와 더불어 생부를 갈문왕葛文王에 추봉한다. 새로운 왕이 죽은 아버지를 갈문왕에 추봉하는 것은 신라사의 일반적인 패턴이다.

다만 김춘추 시대가 개막하면서, 더불어 그 무렵 신라가 중국의 예제禮制를 대폭 수용하기 시작하면서, 갈문왕을 정점으로 하는 왕통의 선대 추숭 시스템도 변모를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신라사에서 갈문왕이 사라진 것은 이 무렵으로 간주하며, 그것은 중국 예제의 영향 때문이라고 본다. 이렇게 사라진 갈문왕이 신라 하대에 잠깐 등장하거니와, 이는 전통의 부활로 본다.

그런 점에서 김춘추의 등장은 획기였다.
 

양자 시스템은 여러 모로 신라 예제 변화에 획기였다.

 
춘추는 종래의 신라 예제 시스템에 따라 생부는 갈문왕에 추봉하면서, 양부는 중국적 예제 시스템을 따라 대왕에 추봉한 것이다.

지금의 관념에 의하면 양부보다는 생부에 치중했을 법한데, 김춘추가 생부보다 양부를 더 중시한 듯한 흔적을 보이는 이유는 첫째, 생부에게서 받은 사랑이 실은 상대적으로 적었고, 둘째 그 어머니 천명의 영향이 컸기 때문이라고 본다.

천명은 애초에 짝으로 용춘을 점찍었지만, 그 어머니 때문에 할 수 없이 용수에게 시집을 갔다. 이 점도 고려 대상이라 본다.

화랑세기는 용수의 아버지를 동태자銅太子, 곧 진흥왕 맏아들인 동륜銅輪태자 아들로도 보기는 했지만, 그 태생에 대해서는 이미 김대문 당시에도 이설이 있었던 듯, 13세 용춘공 전에는 이런 언급이 보인다.

“(용춘)공의 형 용수龍樹 전군殿君은 혹 동태자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금태자金太子(금륜, 곧 진지왕·인용자) 아들이라고도 하는데 그 진실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이 대목에 바로 뒤이어 “《전군열기殿君列記》에 이르기를 ‘공은 곧 용수 갈문왕의 동생이다. 금륜왕이 음란함에 빠졌기에 폐위되어 유궁幽宮에 3년간 살다가 붕崩했다”는 말이 보인다.

이를 통해 우리는 용수는 아버지가 금륜, 곧 훗날의 진지왕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것은 용수를 갈문왕葛文王으로 부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자료에 의하는 한, 용수가 갈문왕이 되는 조건은 그의 아들 춘추가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직 이 조건만이 용수가 갈문왕이 될 수 있는 자격을 설명한다.

따라서 용수가 김춘추의 생부임은 명백하다. 아니, 더욱 정확히는 김춘추는 생부가 용수임을 알았다.

용수의 아버지에 대한 이설이 있듯이, 김춘추 역시 아버지에 대한 기술에서 혼란이 발생한다. 그를 용수의 아들로 봤지만, 정작 18세 춘추공 전 세계에서는 그를 “용춘의 아들”이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서술한 까닭은 김춘추가 법적으로는 엄연히 용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2017.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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