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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sWho in Ancient Korea

화보(花寶)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8. 3.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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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태종무열왕 때 재상을 지낸 김량도의 딸이다. 아버지가 생전에 또 다른 딸 련보(蓮寶)와 함께 절에 희사했다 한다. 

해동고승전 권 제1 법공(法空) : 21년(534) 천경림의 나무를 베고 정사를 세우려고 터를 닦다가  주초와 석감(石龕)과 섬돌을 발견하니 과연 그곳은 옛날 초제(招提)의 옛 터였다.  대들보감으로 쓸 재목은 다 이 숲에서 나왔다. 공사를 다 마치자 왕은 왕위를  사양하고 스님이 되어 이름을 법공이라고 고치고 삼의(三衣)와 와발만을 생각했다. 뜻과  행은 원대하고 고매하였으며, 일체 자비를 가졌다. 그리고 그 절 이름을 대왕흥륜사라고 했는데, 이는 대왕이 머물러 있는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이것이  신라에서 절을 창건한 시초이다. 왕비도 또한 부처님을 받들어 비구니가 되어  영흥사에 머물렀다. 이로부터 큰 (불)사를 열어 일으켰으므로 왕의 시호를 법흥이라 한 것은 헛된 찬사가 아니다. 그 뒤로는 염촉의 기일을 맞이할 때마다 흥륜사에서 법회를 열어 그의 지난날을 추모했다. 태종왕 때에는 재상 김량도가 서방을 신앙하여 두  딸을 희사했다. (두 딸은) 화보와 연보라 했으며 이 절의 사비로 삼았다. 또 역신이  모척 일족도 천역에 충당하였으므로 구리와 주석 두 부류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천역을 맡고 있다. 

삼국유사 제3권 흥법 제3 아도기라(阿道基羅) : 그 뒤 태종왕(太宗王) 때 재상 김양도(金良圖)가 불법(佛法)을 믿어 화보(花寶) 련보(蓮寶) 두 딸을 바쳐 이 절의 종으로 삼았으며, 또 역신(逆臣) 모척(毛尺)의 가족을 데려다가 절의 노예로 삼으니 이 두 가족 후손은 지금까지도 끊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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