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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황당무계한 만두 굽는 가마 만두요饅頭窯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19. 11.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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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자 전남 강진군 의뢰로 이곳 청자가마터 유적을 발굴한 민족문화유산연구원(원장 한성욱)이 느닷없이 만두요饅頭窯라는 걸 발견했다고 소란을 떨었으니 


만두요란 무엇인가? 글자 그대로는 만두를 구워 내는 가마라는 뜻이다. 가마란 무엇인가? 군불 열라 때서 아궁이에다가는 가끔 고구마도 구워먹고 하는 그런 그릇 만드는 틀 혹은 부엌이다. 만두요라고 하면 100이면 100명이 다 만두를 만드는 가마라 생각한다. 


한데 이 만두요가 고고미술사, 특히 도자기(뭐 도자기 하니깐 있어 보이지 그릇이다!!! 있어 보일라고 도자기로 지들이 쓸 뿐이다)를 전문적으로 연구한다는 도자사학계, 나는 이들을 그릇쟁이들이라 부르는데, 암튼 이 그릇업계서는 전연 다른 맥락으로 받아들이니, 그릇을 구워내는 가마 전체 생김새가 만두를 닮았다 해서 이리 부른다. 


따라서 만두를 굽는 가마가 아니라 만두 모양으로 생긴 가마를 표현하고자 한다면  만두형요饅頭形窯 정도로 불러줌이 좋은 듯한데 한 글자로 줄일 요량인지 이리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다. 


한데 다음 문제는 만두 모양 가마????


머리가 띵 해진다. 만두 모양이 천편일률이라면 더는 추가 설명이 필요없겠지만, 만두 모양이 얼마나 다양한가? 내친 김에 지금 우리 시중에서 팔아제끼는 만두들 사진을 제시한다. 





이건 뭐 정형성이라고는 눈씻고 찾을 길이 없다. 그냥 길쭉이 지맘대로 만두라 해야겠다. 





왼편 한 줄을 이루는 게 만두인데, 이건 오믈리형이라고 해 두자. 





그럼 이건? 이게 어쩌면 작금 만두업계 대세라 할 만한데, 그런 위상에 견준다면 만두업계 펭수 정도이니 펭수형 만두라 하자. 





그럼 이 둘은? 속내를 보기 전엔 찐빵인지 만두인지 구분이 어렵다. 


앙코가 있으면 찐빵, 그렇지 않은 잡탕이면 만두 이렇게 한다. 



이것들이 시중에 유통하는 만두들이다. 보다시피 모양새 열라 다양하다. 


이런 판국에 만두요? 만두처럼 생긴 가마라고?


그렇다면 저 만두요란 저런 만두들 중에서도 무엇을 지칭할까?


마지막 두 장 찐빵형을 말한다. 






이번에 팠다는 만두요 바닥 구조는 이렇다. 뭐 타원형이라 했는데, 원형의 일종이다. 타한 동글뱅이가 타원형이다. 무슨 타원형이라는 데가 방점을 두기도 하는 듯한 기술을 보는데, 암짝에도 쓸모없다. 원형이다!!! 


바닥은 이런데 그렇다면 윗 부분은?


이걸로는 알 수가 없다. 왜? 날라갔기 때문이다. 


한데 이걸 왜 만두요라 하는가?


중국에서 이런 바닥 구조를 한 가마가 부지기로 발견됐다. 그러니 어렵지 않게 그 모양을 추정 가능하다.


어떤 모습인가?




요로코롬 생겨먹은 것이다. 


이제서야 찐빵 혹은 찐빵형 만두와 엇비슷해지지 않았는가?


결론은 하나다. 


만두요라는 표현이 학술적으로 중요하고, 중국과의 관련성을 언급하고, 나아가 그쪽 도자사학도들을 끌어들이려 할 때는 저 용어가 매우 중요하다. 


다만, 저 말을 남발해서는 안 된다. 


첫째 만두요는 만두를 굽는 가마이고 

둘째 그 모양새를 종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저 만두요는 무엇을 말해주는가?


그 이전 비슷한 가마터 흔적에서는 전연 보이지 않다가 느닷없이 나타난 구조


더구나 그런 흔적이 이웃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흔히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면 


볼짝 없다. 


그쪽에서 수입한 것이다. 


그쪽 영향이 강력한 것이다. 


현재로서는 저 가마 혹은 저 가마를 이용한 기술은 당연 빠따로 중국에서 들어왔다. 



다음으로, 이 기술 전수가 간접인가 아니면 직접인가?


예서 간접이란 예컨대 고려 장인이 중국에 가서 만두요를 보고서 그걸 본국에서 와서 흉내내는 공정 같은 것을 말한다. 


반면 직접이란 저런 가마를 중국에서 운용하던 중국 장인이 직접 와서 강진에서 만들어 쓴 것을 말한다. 


강진 만두요는 어느 경우인가?


이 또한 볼짝 없다. 


중국 친구들이 직접 와서 만들어 운용한 것이다. 


강진이 본래 그런 곳이다. 이곳은 한반도가 영파가 상징하는 양자강 유역 혹은 그 이남 지금의 중국 중남부 유역 해안과 교류하는 창구다. 


서해를 횡당한 배들과 선원들이 딛고 쉬는 곳, 그 관문이 강진이다. 강진康津은 탐진耽津이라고도 했다. 이미 지명 자체가 津이지 아니한가? 그만큼 배가 뻔질나게 들락거린 항구라는 뜻이다. 


이 강진을 통해 고려시대만 해도 무수한 배가 오갔으며, 열라 많은 중국인이 들이닥쳤다. 고려사나 고려사절요 읽어봐라. 상선만 해도 얼마나 뻔질나게 들락거리는지?


개중 어떤 놈은 밀항 밀입국하기도 했다. 혹자는 고려에 가면 돈 번다는 소문도 돌아 그걸 믿고 정착한 놈도 있고, 선장이랑 한판 붙어 도망쳐야 했던 놈도 있다. 그런 밀입국자 혹은 정식 허가를 받아 들어온 친구 중에 도공이 있었다. 


볼짝 없다. 


저 만두요는 중국 도공이 직접 와서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괜히 엄한 말로 빙빙 돌릴 필요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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