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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훈민정음 정인지 서문을 다시 본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3.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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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세종실록에 나오는 훈민정음 정인지 서문에,

/象形而字倣古篆, 因聲而音叶七調.(상형이자방고전, 인성이음협칠조)/

가 나오는데, 국어학 논문들을 보면, 아직 이 구절에 대해 정확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물론 기존의 세종실록 번역문은 부정확한 번역이다. 훈민정음 관련 논문을 쓰려면 이 구절 해석이 가장 중요하다.


해석하기 위해서는 우선 각각 어휘의 뜻을 알아야 하고, 이 구절이 어떤 구조로 연결되어 있는지 그 문장의 구조를 알아야 한다.



‘象形’, ‘古篆’, ‘因聲’, ‘七調’ 등과 ‘倣’, ‘叶’의 뜻을 알아야 하고, ‘而’의 뜻을 알아야 한다.

상형象形’은 ‘형상을 기호화했다’는 뜻이다. 이를테면, 이응(o)은 목구멍 모양을 기호화했고 미음(ㅁ)은 입 모양을 기호화한 것이다.

고전古篆’은 ‘옛 전서체의 글자’를 의미한다. 여기에 무슨 심오한 뜻이 있는 건 아니다. 역사가 있고 누구나 인정하며 옛 성현이 만들었다는 무게감이 담겨 있다.

인성因聲’은 ‘상형’에 대응하는 단어인데 ‘形’이 시각 자료라면 ‘聲’은 청각 자료이다. ‘形’은 눈으로 볼 수 있고 ‘聲’은 귀로 들을 수 있다. ‘발성’이다. ‘인성’은 ‘소리나는 대로 따랐다’는 뜻이다.

칠조七調’는, 음악적인 부분이라 내가 정확히 단언하지는 못하겠으나, 궁상각치우라든지 황종 태주 등등, 5音 12律과 관련된 음조의 높낮이 기준을 말한다.

협叶’은 ‘들어맞다. 어울린다. 등등’의 뜻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글자가 ‘방倣’인데, 국어학계 기존 논문에는 크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모방하였다’와 ‘닮았다’이다.

이건 앞뒤 구절의 대칭구조라든지 ‘말 이을 而자’의 문맥 리듬으로 봤을 때에 ‘닮았다’가 맞다. ‘고전과 닯았다’라는 말은 ‘어중이떠중이 허접한 글자가 아니라’ ‘옛 전통이 있어서 그 가치가 높게 인정되는 문자, 고전과 같다’라는 뜻이다.

이제 ‘말이을 而’, 접속사의 뜻이 조금 고민거리가 되겠는데, 내가 보기에, 이 접속사는 앞뒤 구절을 역접으로 연결한다. 기존의 논문은 대개 순접으로 풀이하고 있는 듯하다.

내 해석이 혹시 맞다면, 기존논문들 이 구절 해석은 모두 틀린 것이 된다. 그래서 100퍼센트 장담은 못하겠다.

그 수많은 논문을 모두 오류라고 하자니 조금 내가조심스러워진다.

하여튼, 저 구절은 “形을 象하였으나 字는 古篆과 흡사하고 聲을 因하였으나 音은 七調에 맞아떨어진다”의 구조로 번역하는게 옳다고 본다.

입모양, 이빨모양, 목구멍모양, 이런 걸 기호화해서 글자를 만들었으니 허접하다고 여길 자도 있겠지만, 이 글자들은 허접한게 아니라 옛 글자 고전과 비슷한 모양이다.

그러니 모양을 보고 하찮게 여겨서는 안 된다.

소리나는 대로 발성음을 그대로 따라서 발음을 정하였으니 이 문자의 발음이 올바른 소리가 아니라고 여길 자도 있겠으나,

음악의 기본 규율인 칠조 규칙에 딱 들어맞는다. 그러니 하찮게 봐서는 안 된다.


라는 뜻이다.

“形을 象하였으나 字는 古篆과 흡사하고 聲을 因하였으나 音은 七調에 맞아떨어진다”

논문을 모두 찾아서 읽지 않았으므로, 이 해석에 동의하는 국어학자가 이미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2023년 동지 하루 지난 토요일. 박헌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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