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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송은의 뮤지엄톡톡

훈훈 곱돌 삼형제 이야기-최종회

by 여송은 2019.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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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송은 온양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흰 눈이 덮인 산중에는 풀도 꽃도 동물들도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이따금씩 겁에 잔뜩 질린 산토끼만 귀를 쫑긋 내 놓고 두리번 거릴 뿐입니다.

온양 산중마을의 겨울은 올해도 이렇게 혹독하기만 합니다.

 

 

 

"엄마... 엄마...."

 

 

"아가 깼니? 어디보자.. 아이구 이마가 아직도 불덩이구나..."

 

 

"엄마... 저 괜찮아요..."

 

 

"오..그래그래.. 좋아질거다. 아빠가~~ 우리 온주가 좋아하는 팽이 만들어주러 나무하러 가셨단다.

우리 온주 얼른 일어나서 엄마랑~아빠랑 같이 팽이 돌리고 놀자~"

 

 

"네...콜록콜록.. 엄마...아빠 언제와요?...밖에 추운데..."

 

 

"아빠~~장독대에 쌓여있는 눈 다 녹으면, 그 때 오실거란다. 그러니깐 우리 아가도 그 전까지 잘 이겨내서 아빠오시면 씩씩하게 같이 팽이 돌리자~~~"

 

 

"네...엄마... 자꾸 눈이 감겨요..힘들어요..."

 

 

"오냐오냐..괜찮다. 엄마 옆에 있으니깐 아무일도 없다. 아무 걱정말고 한숨 푹 자자"

 

 

"네.. 엄마 추워요...죄송해요...아파서.."

 

 

"...그런말 말고 약 먹고, 푹 자자"

 

 

"네..."

 

 

"화로에 불 좀 더 넣어야 겠다...온주아버지 잘 가고 있지요?..."

 

 

 

 

화로, 화로집   곱돌, 한지 

추운 겨울철 외풍을 막거나 방 안의 공기를 덮히기 위해 방 안에 손화로를 두고 사용하였다.

화로는 주로 곱돌로 만들었는데, 곱돌이 열을 잘 견디고 오랫동안 보존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로집은 숯불을 피울 때 재가 바람에 날리지 않고 불이 잘 붙도록 씌어 놓았다.

 

 

 

그 전날밤...

 

 

"저기, 나 공주에좀 다녀오겠소."

 

 

"온주아버지...기어이 거기를 다녀 오려고요? 이 겨울에 차령고개 넘는게 얼마나 위험한데... 거길 갈려고요. 겨울 좀 지나고, 눈 녹으면, 그 때 가시면 안될까요?"

 

 

"눈 녹으면? 그때까지 우리 온주가 기다려 줄까싶소... 뭐라도 해봐야지 않겠소. 우리 온주도 이 세상 한 번 살아봐야지, 저렇게 누워만 있다가 그대로 가게 할 순 없소."

 

 

"...하...저는 온주아버지까지 잃을까봐 그게 걱정이예요..."

 

 

"쓸데없는 소리하지마오! 가서 그 곱돌장인한테 손이 발이되도록 빌고 빌어 약주전자 얻어내겠소. 그 약주전자에 약을 달여 마시면 씻은듯이 병세가 좋아진다고 들었소. 뭐라도 해봐야하지 않겠소. 나는 마음이 너무 급하오. 당장 내일 동 트기 전에 떠날것이니 채비좀 해주시오."

 

 

"...네. 부디 몸 조심히 다녀오세요..." 

 

 

 

살갗이 에일듯이 추운 새벽,

장독대 앞에서 정안수를 떠 놓고 누군가 정성스럽게 기도를 합니다. 

 

 

"비나이다...비나이다... 삼신할머니께 비나이다... 부디 우리 온주 건강하게 일어나게 해주시고...우리 온주아버지...제발...제발 무사히 다녀 올 수 있도록 해주세요...비나이다...비나이다..."

 

 

"...나 다녀오겠소!" 

 

 

끼익....쾅.

 

 

 

 

아버지는 부인이 준비한 주먹밥 세 개, 자라병에 담은 물, 혹시 모를 들짐승에 대비한 장도를 챙겨들고 기나긴 겨울길을 나섰습니다.

 

 

 

 

자라병  질흙, 종이

자라병은 휴대용 물병으로 외출할 때 물이나 술을 담는 데 사용하였다.

바닥은 평평하고, 주둥이는 자라가 목을 뺀 형태라 자라병이라고 한다.

목재, 자기, 옹기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었으며 이 자라병은 지승으로 주머니를 만들어 휴대하기 편하게 하였다.

 

 

 

야속하게도 온양에 왜이렇게 눈이 많이 내렸는지 둥구니신에 설피까지 신었는데도, 허리춤까지 발이 푹푹 빠졌습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적막한 눈덮힌 산, 이따금씩 푸드덕 거리는 꿩소리만 울려퍼지는 칠흑같은 산중. 

 

그 눈 덮힌 산을 혼자 걷는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무섭지는 않았을까요.   

 

그렇게 아버지는 무거운 눈길을 한 발 한 발 디뎌 나갔습니다.

 

 

 

 

둥구니신, 설피   짚, 노간주나무

둥구니신은 짚으로 종아리까지 오도록 엮어 만든 신으로 ‘멱신’이라고도 하며 눈이 많이 오는 지역에서 신었다.

설피는 산간지역에서 눈에 빠지거나 미끄러지지 않도록 신바닥에 덧댄 신이다.

 

 

 

까만 밤하늘에 별빛이 머리 위로 쏟아질 듯 반짝입니다.

춥고 기나긴 길을 걸어온 아버지가 어느 암자 앞에서 멈춰섰습니다.

 

 

"헉헉..헉헉...여기인것같은데... 계곡 지나 절벽에 있는 암자라고 했는데, 아무도 없는건가...아이구 잠들면 안되는데 왜이렇게 졸리지. 일단 암자 안에서 잠깐 눈좀 붙일까."

 

 

추운 겨울 산길을 걸어온 아버지는 고되었는지, 암자에서 스르륵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툭툭! 거 누구슈. 누군데 여기서 잠을 자오!"

 

 

"어이쿠.. 죄송합니다. 아!! 혹시 곱돌 장인 아니신지요?"

 

 

"아니오. 그런사람 없소."

 

 

"아니요.. 손을 보니 맞는것 같습니다. 돌을 다루다보니 손 마디마디가 거칠고 터지고, 특히 오른손 검지손가락 마디가 다 터지셨네요. 보통 석공들은 오른손으로 망치를 잡고, 왼손으로 정을 잡기에 왼손에 상처가 많지만... 제가 찾는 분은 왼손잡이라 들었습니다. 그래서 반대로 오른손에 유독 상처가 많겠지요. 당신처럼요."

 

 

"... 거 참 귀찮게 됐네 그려. 뭣때문에 왔는지 거 얘기나 한 번 들어봅시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허 참나 아직 뭐 해준다고 말 안했소. 그냥 말이나 한 번 들어 본다는거지."

 

 

"저희 아이가 많이 아픕니다. 보잘 것 없는 저인데, 한 평생 저와 같이하고 싶다고 믿고 따라온 여인이 있었습니다. 가족도 친구도 다 버리고 저 하나만 보고 따라왔습니다.

 

이 아이는 그런 사람과 저 사이에 7년만에 어렵사리 찾아온 선물 같은 존재입니다. 좋은거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고, 맛있는거 맛보여 주고 싶은 것도 많고, 그득그득 찬 물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바다라는 것도 보여주고 싶고, 저는 못했지만 좀더 세상속에서 당당하게 살아갔으면 하는데... 그런 아이인데... 아파서 계속 누워만 있습니다. 펄펄 끓는 작은 몸둥이 하나 일으키지 못하고 누워만있습니다.

 

다 필요없고 우리 아이가 건강하게 마당에서 팽이 돌리면서 저희 둘을 보고 웃었으면 좋겠습니다..."

 

 

"어허 참 괜히 들었소. 내가 손은 이리 거칠어도 마음이 여리다 말이오... 귀찮게 됐네 그려. 딱 보름이오. 보름동안 이 암자 쓸고 닦으며 하루도 빠짐없이 정성된 마음으로 기도하시오. 보름되는날 새벽, 내 암자 앞에 약주전자 하나 놓고 갈테니 동 트기 전에 그거 가져 가시오."

 

 

"아이고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

 

 

"됐소. 다음에 그 아이와 함께 놀러나 오시오."

 

 

 

아버지는 그날 이후로 곱돌장인이 말한대로, 암자를 지키며 밤낮으로 정성스럽게 기도를 하였습니다.

가끔씩 암자 뒤 산에서 돌 깨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습니다.

하루, 이틀... 드디어 보름이 되었습니다.

동트기 전 아버지는 떨리는 마음으로 암자를 나섰습니다.

 

 

 

정말 곱돌장인이 말한대로 암자 앞에 곱돌주전자와 보자기 하나가 놓여있었습니다.

 

 

 

곱돌주전자

곱돌은 보온성과 내구성이 좋아 차를 달여 마시거나 약을 달여 마실 때 많이 사용하였다.

이 곱돌주전자는 전체적으로 퉁퉁하고 안정감 있는 모습을 줘 왠지 향긋한 차 보다는 몸과 마음을 안정시키고 치유할 수 있는 약을 달여 보관한 다음 마셨을 것 같다.

주전자의 주둥이, 양송이버섯 같은 손잡이, 뚜껑의 앙증맞은 율각형 꼭지까지 전체적으로 귀여운 모습을 보여준다.

 

 

 

조심스럽게 주전자의 뚜껑을 열어보니 곱돌장인의 서신이 들어있었습니다.

 

 

온주아버지 보시오. 곱돌로 만든 주전자오. 정성스럽게 약을 달여 여기에 보관한 다음 하루 세 번 아이에게 먹이시오.

세 번의 양을 보관하기 위해 좀 더 주전자 통을 퉁퉁하게 만들었소. 아 그리고 이 보자기 안에는 백년된 박달나무로 만든 약연이 들어있으니, 그걸로 약재를 갈아 달이시오. 우리집 대대로 내려오는 물건인데, 뭐 나는 딱히 쓸일이 없어...

 

하루 바삐 가야할 텐데, 온양 넘어가는 지름길을 알려주겠소. 암자 뒷 산으로 난 길을 따라 쭉 가시오. 가다보면 두갈래 갈림길이 나올텐데,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시오.  추운 겨울이지만 따뜻한 온양쪽으로는 물이 녹아 흐를것이오. 그럼 설화산으로 이어져, 왔던 길보다는 곱절로 빨리 온양에 갈 수 있을 것이오. 눈빛이 선한 당신 아이와 부인 오래 행복하였으면 좋겠소. 

 

 

 

 

약연  박달나무

약재를 가루로 빻거나 즙을 내는 의료 기구이다.

약연 안에 약재를 넣고 손잡이를 잡고 주판알처럼 생긴 연알을 앞뒤로 굴려 사용하였다.

 

 

아버지는 물건을 챙겨들고 곱돌장인이 알려준 길로 곧장 갔습니다.

 

 

"온주아버지? 흠...그런데 내가 우리 아이 이름을 말해줬었나... 모르겠다!! 어서 서둘러 가야겠다."

 

 

길을 따라 가다보니 곱돌장인이 말한대로 두 갈래길이 나왔고, 아버지는 물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갔습니다.

왔던 길 보다 눈이 덜 쌓였고, 군데군데 눈이 녹아있어 훨씬 쉽게 집에 도착 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서둘러 곱돌장인이 준 약연을 꺼내 약재를 갈아 즙을 낸 후 약을 달였습니다.

밤낮으로 기도하며 곱돌주전자에 약을 넣은 후 하루 세 번 아이에게 먹였습니다.

 

아이는 점점 기운을 차렸고, 눈이 녹고 봄이 오자 마당에 나와 팽이를 치고 놀았습니다.

 

 

 

"온주아버지 저는 정말 꿈만 같아요. 우리 온주가 저렇게 다시 건강해져서 우리 앞에서 웃고있다는게요."

 

 

"나도 그러오. 정말 그 곱돌장인이 아니었더라면 이런 날도 없었을텐데... 그래서말인데, 우리 경칩 즘 셋이 그 암자에 같이 가볼까하오. 다시 우리 가족 웃게 해준 곱돌장인에게 감사 인사도 드릴겸"

 

*경칩蟄  봄에 해당하는 절기로 양력 3월 5일경이다.  '경칩이 되면 삼라만상이 겨울잠을 깬다.' 라는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만물이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생동감이 넘치는 시기이다.  

 

 

 

 

온주네 가족은 곱돌장인을 만나러 집을 나섰습니다.

아버지는 곱돌장인이 알려준 지름길이 생각나 설화산 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저번 내려왔던 그 길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참을 찾다 다음에 원길로 가야 겠다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거 참 이상하다.. 분명 내가 이즘에서 내려온 것 같은데, 왜 길이 안보이지. 그다른 곳으로는 내려올 길이 없는데... 그러고보니 내가 내려오던 날은 산에 눈도 별로 없고 좋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경칩인데 산에 눈이 아직도 안녹았네. 내가 그날 뭔가에 홀렸던걸까..."

 

 

 

온주는 완전히 건강해 졌고, 온주네 가족은 웃음을 찾았습니다.

그 날 이후로 온주네 가족은 아플 때면 퉁퉁한 곱돌주전자에 약을 달여 마시며 곱돌장인의 은혜에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며 살았습니다.

 

 

 

 

 

 

 

 

 

 

 

 

.

.

.

 

 

끝인줄 알았지?

 

 

 

 

 

동자의 얼굴을 한 삼신할매

 

 

"야 뚱뚱 곱돌이 눈물 닦아. 잘 봤냐? 너가 어떻게 말들어 졌는지. 어떤 이유로 만들어 졌는지."

 

 

 

"네... 그동안 형은 날씬하고 잘생기게 태어나고, 나는 뚱뚱하게 태어나서 나만 냄새도 맛도 고약한 약 담고 있어야 되는지 투덜거렸던 날들이 너무 부끄러워져요. ㅜㅜ"

 

 

"그래 알았으면 됐어. 내가 아무 이유 없이 만들지는 않는다니깐! 다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에 대해서는 이유가 있는거야. 아직은 모를수도 있고, 뭐 죽을때까지 모를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나름의 이유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그러니깐, 뚱뚱 곱돌이 그만 투덜거리고 그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웃고 잘하자잉??"

 

 

"네!!!"

 

 

"좋아! 그럼 저 약좀 담아서 가져와봐. 내가 요즘 안그랬는데 자꾸 허리가 쑤신단 말이야. 저 약이 허리에 그렇게 좋다는데."

 

 

"읍!!! ㅠㅠ 그거 정말 쓴건데......."

 

 

"읍~~~~?!! 잘한다며??!! 곰방 잊어버리네????"

 

 

"넵!!! 알겠습니다!!!"

 

 

 

 

 

 

 

곱돌장인은 누구였을까요? 아직도 그 암자에서 잘 지내고 있을까요?

삼신할매는 세상에 태어난건 다 이유가 있다고하는데, 이유를 찾으셨나요. ㅎㅎ

건강해진 온주와 철든(?) 곱돌 주전자를 축하하며 이야기 마치겠습니다.

 

 

 

 

*약은 약사에게. 약은 식 후 세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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