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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현장

[충주 장미산성으로 가는 길] (1) 눈덩이 불듯 늘어난 일정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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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산성 목곽 물탱크에서 by 김영관


뭐 대단할 것도 없지만, 나아가 나로선 명확한 메시지를 전했다고 생각했지만, 지인들 사이에서는 내가 무슨 자리를 얻어 나가지 않느냐 하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얼마 전 나는 그간의 칩거생활을 청산하고 이제는 현장도 돌아다니겠다 했거니와 

그 일환으로 아예 근 10년간 발길을 아주 끊다시피 한 발굴현장에도 이젠 돌아보겠노라 했거니와, 2015년 이후 2년간 해직 생활에서는 그래도 간헐로 현장을 돌았지만, 이후 문화부장과 K컬처기획단장으로 이어진 저 막판 기레기 보직생활과 그것을 벗어버린 뒤 퇴직 생활은 그 자체가 현장을 멀리하게 하는 측면도 없지는 않았다. 

그런 참에 마침 국립중원문화유산연구소가 충주 장미산성을 팠다 하고, 대국민 현장 공개를 한다 해서 어제 2026년 9월 4일 금요일 남영동 사저를 출발해 현장으로 떠났다. 



장미산성 물탱크에서 by 자뻑



애초엔 아무데도 연락하지 아니하고 갈 작정이었지만, 이런저런 개인 취재 과정에서 정보가 새나가는 바람에 그짝에서도 온다고 준비한다 해서 괜히 번거로워졌다. 

분명 저 현장 한 군데만 돌 작정이었지만, 옛날 경험도 그렇고, 어제도 그랬는데, 막상 그 과정에서 눈덩이처럼 일정이 불어나고 만나는 사람 또한 기하급수로 확대하게 되니

如컨대 내 친구 이영덕 원장이 내가 충주를 가는 어제 저녁 대전에서 지인 김주연씨 개인전을 한다면서 그쪽에 가니 합류하라 해서 결국 그리 되었고 

또 막상 내가 내려간다 해서 저짝에서 연락이 오기를 현장에 가기 전에 이번 출토품들은 연구소 전시실에다가 내놨으니 유물들을 먼저 보는 편이 좋겠다 해서 들어보니 그래서 먼저 연구소로 날랐다. 


장미산성 출토 시루 세트랑 아궁이 부재



한데 시간 계산을 잘못해서 10시 무렵 도착한다 해서 7시에 남영동을 출발했지만 이런 댄장? 두 시간 만인 9시에 도착 예정이라, 그래 실로 간만의 충주행이니 온 김에 중앙탑이나 둘러볼까 하다가 시간이 좀 애매해서 연구소로 바로 갔다. 

서울에서 풍납토성으로 먹고 살던 이보람 학예사가 마침 이번 발굴 현장 담당이라, 기간 밥 한 번 사겠다 해서 공수표만 남발해서 미안하기 짝이 없던 차라, 갔으니 왔노라 하지 않을 수 없어 기별 넣으니 달려나오는지라, 또, 왔으니 어찌 소장님과 실장님께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서 노명구 소장과 차 한 잔 하며 노닥이고선 정자영 실장한테는 왔노라 신고만 하고 잠깐 얼굴 뵈고 전시실로 내려가 이 선생 안내로 돌아봤으니, 그러고 보니 내가 중원연구소 방문 자체가 아예 개소 이래 처음이었으니 와! 20년 만이라는 사실이 나로선 믿기지 아니했다. 


장미산성 똥개랑 똥돼지



아 그러고 보니 그 어중간에 탑평리 발굴 때인가? 김성범 선생 이 연구소 재직 시절에 한 번 들르기는 한 듯하거니와, 암튼 건물은 어딘지 익숙한 듯하지만, 전체는 생소한 듯하니 내가 어쩌다 이 나이가 되었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르겠다. 

현장 공개는 두시 반이라 해서, 대략 전시관 관람이 열한시쯤 끝나고 나니 점심을 사고 싶다 했지만 쌩까는지라, 그래 잘묵고 잘 퍼질러 잘 살아라 이보람 저주하고 나니 남는 시간이 어중간했다. 

그래서 중앙탑이나 돌고 점심은 적당히 채우리라 작정하곤 나서다가 순간 옛날 고약한 버릇 발동했으니,

나는 내가 가는 현장을 누가 다녀갔으며, 누가 오며, 또 누가 올 예정인지를 탐문하는 버릇이 있거니와, 왜? 그걸로 공부하는 사람과 공부하는 척 하는 놈들을 구별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충주사고 발굴 현장




일전에 내가 말했듯이 저 학계 있는 놈들이 언제나 하는 말이 현장 혹은 유물을 보고 싶으나 안 보여준다고 하는 불평 불만을 토로하곤 하지만

그런 말하는 놈들은 하나 같이 특징이 있는데 나를 왜 자문위원으로 안 부르냐는 시위지 결코 현장을 진짜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말은 아니다. 

자문위원 같은 자격이 아닌데도 자발해서 내가 공부하겠다 해서 현장에 나타나는 교수놈 없다! 그런 교수로 넘쳐났으면 한국고고학이 이 모양 이 꼬라지겠는가?

뿔만 먼저 난 못된 송아지 천지라, 쥐뿔도 없는 놈들이 무슨 자리를 그렇게나 탐하는지, 자문위원이니 평가위원이니 하는 완장 차지 못해 환장한 놈 천지라, 좆도 모르는 놈들이 무슨 자문위원이고 무슨 문화재위원이고 무슨 유물평가위원이란 말인가? 


충주사고 야시꾸리 시설 노출 현장



순간 이 옛날의 고약한 버릇이 작동해 이쪽을 공부한다는 사람 중에서는 누가 오는지를 탐구하니, 백제사 전공 충북대 사학과 김영관 교수가 전시실로 온다 했다 하고, 광진구청 공무원질 하다 한성대 교수로 튄 사학도 윤성호 교수가 온다 했댄다. 

두 분 다 친분이 남달라 연락을 취하지 않을 수 없어 차례로 연락을 취하니, 김영관 교수는 한양대를 막 정년퇴직한 고건축학도 한동수 선생을 조우할 예정이라 하면서 왈, 오늘은 전시실만 돌고는 저녁 충주 시내에서 있을 장준식 선생 개인 소장 탁본전 개막실에 참석할 예정이라 하거니와 엥?  

하고선 그렇담 나 또한 인사드리지 않을 수 없어 김교수랑은 점심시간 만나기로 했다.

윤성호가 온다 했으니 이 친구도 기별을 넣으니 조금 뒤 도착인데 시내 충주사고 발굴현장을 보기로 했댄다.

무슨 발굴현장? 탐문하니 이런 댄장, 장준식 선생이 이사장으로 있는 그 국원문화유산연구소 발굴현장이랜다.


본인 탁본을 설명하는 장준식 선생



하이고야 그렇담 나도 가겠노라 해서 그 지긋지긋한 중앙탑은 제껴버리고 잘됐다 싶어 그 발굴현장으로 가기로 하고 윤은 거기서 만나기로 했다.

장 선생께 기별 넣으니 문화회관 관아지 소재 바로 그곳이 발굴현장이라 하며 지금 시내 어디에 있는데 열한시 반까지 현장으로 오시겠댄다.

현장에 도착하니 마침 오늘 내일이 충주문화유산 야행하는 날이라 해서 관아지 주변은 온통 관련 시설이 들어찼다.

현장은 관아 정문 바로 맞은편 번다한 주택가 음식가였다.

현장은 제법 넓었으니, 간판 살피니 충주사고지였다.

현장은 펜스를 치기는 했지만 다 개방이었고, 인부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한창 때빼고 광내는 중이라, 여쭈니 오늘 야행이라 해서 현장을 개방한다 해서 청소하는 중이라 했다. 


장준식 선생 성덕대왕 신종 공양자상 부문



드러난 유구들은 조사 책임자 설명을 듣지 아니하면 이해하기 곤란한 건물지들이라, 한데 요상한 흔적이 있었으니, 딱 봐도 깊이는 무르팍 높이도 채되지 않는 작은 직사각형 연못이 쌍으로 나란히 일정한 거리를 두고 드러났으니 왜 이것이 요상한가 하면 

첫째 바닥은 잔 강자갈을 아주 촘촘히 깔아고, 그 벽면은 기와랑 벽돌을 아주 정성스럽게 쌓았기 때문이었다. 

둘째, 나중에 장준식 선생과 윤성호 선생 설명을 듣고 더욱 확연해졌지만, 언뜻 봐도 그 기와랑 벽돌이 보통내기가 아니어서, 충주사고는 분명 조선시대 건축물이었지만, 나는 애초에는 통일신라시대 유물이 아닌가 했지만, 고려시대 유물들이었다.  

일부 벽돌에는 육안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도판과 탁본을 보면 화려하기 짝이 없어 고려 미술 금자탑이라 부를 만했다. 


장준식 탁본 중원 고구려비 세부



이처럼 작은 규모에 바닥 시설을 볼 적에 이는 결코 연꽃을 심은 연못은 아니었다. 나중에 합류한 장준식 선생은 모종의 조경시설일 것이라 본다는데 그럴 것이라 본다. 

그러고 보니 이런 작은 조경시설을 다른 조선시대 건물터 어디에서 난 본 적이 있는 듯한데, 도통 어딘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 

나아가 이 관아터는 적심이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 합류한 장준식 선생 설명을 들으니 그 적심 지름이 2미터를 상회했다! 도대체 얼마 만한 주초를 썼단 말인가? 서울역사박물관 야외 입구에 안치한 그런 서울 종각 주초 같은 돌을 썼단 말인가?

윤성호 교수는 전주사고처럼 건물 바닥은 공중으로 붕 띄위지 않았나 하는데, 서고의 절대 조건은 습기 방지라, 고구려 부경처럼, 또 일본열도나 동남아에서 흔한 현공식 건물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장 대강 둘러보고 야행한다 쳐 놓은 천막 의자에 앉아 한 대 빠니 장준식 선생이 나타나고, 저쪽에서는 윤 교수가 막 도착한다. 

듣자니 탁본전은 바로 인근에서 한다 하면서 지금 막 안치했다 해서 그러면 발굴현장과 탁본 전시장 잠깐 보고는 점심하기로 하고, 이쪽으로 김영관 교수를 합류하라 연락을 취했다. 


지광국사 탑비 측면 택본 부분..장 머시기 새긴 낙서가 있다.



김 교수는 탁본 전시장에서 합류했으니, 각설하고 장 선생 탁본은 정평이 났다.

내가 저 세대 저런 탁본을 직접하고 각종 자료를 소장한 저 세대 다른 인물로 단국대 박경식 선생을 알거니와, 장 선생 왈 "내가 박경식 선생보다는 탁본이 좀 많을 것"이라 한다. 

문제는 연만한 저들 선생 자료 처리 문제! 장 선생은 마뜩한 기관 있으면 기증하시겠다 하는데, 문제는 자료 활용이라 하겠다. 흔히 국가기관에다가 저런 자료들을 몽땅 기증하곤 하지만, 제대로 활용? 되는 꼴을 내가 못봤다. 

그래서 내가 대안을 즉석에서 냈다.

연구원 친구들더러, 연구원 홈페이지 한 쪽 코너에 장준식 탁본 코너를 신설하고선 그쪽에다가 고화질 도판 서비스를 개시하면 좋겠다고 하니, 연구원들도 좋은 생각이라 하기는 하는데, 어찌 될지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두 선생 탁본 자료를 쏵 다 압수해 오는 방법도 있다. 안 내 놓으면? 안 내놓을 수가 없다! 안 내놓으면 뺏어오면 된다. 

장 선생 본인도 그렇고, 내건 탁본들은 그 하나하나가 이미 유물이며, 그 질과 양 모두 방대하기 짝이 없다. 

충주 충북지역 자료들이 중심이기는 하지만, 70년대 이래 무수하게 두들긴 손길이 오롯이 담긴 탁본들은 경이 자체였다. 

요새 같으면야 문화재보호법 위반에 걸릴 일이지만, 그런 법령 정비가 없거나 허술하던 시절에 남겨놓은 자료들이 하나하나 보물 국보가 될 줄이야? 


충주사고 출토 오리 두 마리 노닥임 고려 전돌 탁본. 지긴다.



이 분야 관심 있는 분들은 장준식 탁본전을 꼭 관람하셨으면 싶다!  

예정에 없는 일정을 소화하고선 나는 먼저 혼자 장미산성 현장으로 향했다.

장 선생은 여러 번 현장을 둘러봤다 했고, 김영관 윤성호 두 선생은 중원연구소 전시실로 갔다가 현장서 합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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