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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

19세기 幼學 다시보기

by 신동훈 識 2025.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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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호적에서 

이전에 평민 심지어는 노비 후손들까지도 약 1세기에 걸친 노력으로 

대거 유학으로 등장하는데 과연 유학이란 무엇인가. 

이 유학이라는 이름은 지금은 학생이라는 명칭과 함께 

제사 때나 들어볼 수 있는 "선생" 같은 호칭이 되어버렸지만 

원래는 조선시대 호적에 기록되던 양반 유생들의 직역으로 

18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아무나 붙일 수 없는 이름이었다. 

호적에서 유학을 달면 일단 군역에서 면제되며 

법적으로 과거 응시가 가능한 포지션이 되기 때문에 그 중요성을 말로 해서 뭣하리오. 

조선시대 18세기 전반만해도 서얼들은 "업무" "업유"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뿐 

양반의 끝자락에 해당한다는 이들도 "유학"이라는 이름을 쉽게 붙이지 못할 정도였다. 

그러던 것이 18세기를 넘어 19세기로 들어가면 

동네마다 "유학" 직역이 가득해져서 19세기 후반에는 한 집 건너 한 집에 유학이 있는 상황이 있는데 

이 시기의 "유학"에는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이전에 이미 "유학"직역을 단 중인들은 물론, 이전에 평민, 노비들까지도 "유학"을 달게 되었다. 

그야말로 한국 신분해방사에서 한 획을 그은 사건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우리가 앞서 배삼룡 구봉서 선생의 "양반인사법"에서도 보았지만 

우리는 이 시기 양반이라 하면 "유학"을 달았지만 일자무식으로 

양반 흉내내 냈다는 생각들을 한다. 

정말 그럴까? 

필자 생각에는 19세기에 들어가면 "유학"을 모칭한 사람들은

모칭이라는 이름이 어색할 정도로 양반 유생에 이미 수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학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지식? 배운 경력?

이들은 이미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을 것이다.

왜?

경제적 능력이 되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유학으로 올라선 사람들은 그냥 이름만 양반 직역을 단 무식자들이 아니라 

이미 양반을 모칭하기에 충분한 능력, 지적 수준까지 포함해서-. 

자신들이 보유한 경제적 역량을 총동원해서

이미 양반 유생들의 이런 상태까지 도달해 있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19세기 양반을 모칭한 이들은 그 이전 시기에 이미 양반이었던 이들과 비교하여 

지적으로나 능력면에서 별 차이 없었을 것으로 본다는 말이다. 

아니 오히려 화폐가 어느 정도 돌기 시작하는 기미를 보이는 이 시기에,

그야말로 간신히 행하는 물물교환에서 자본주의로 들어가는 새벽의 시기였던 이 시기가 되면

기존의 양반 후손들 보다 이들, 19세기 새로 등장한 가짜 양반들은

훨씬 적응능력도 뛰어나고 새로운 질서에서 경쟁할 준비가 되어있던 사람들이 아니었겠나.

세습된 직역으로 벌어 먹는 구체제의 양반에 비해

신분상승을 위해서라면 족보까지 바꿀 정도로 적극적이었던 이들에게
기존의 양반들이 상대가 되기 어렵지 않았겠나.

필자가 단언컨데 20세기 한국사의 주인공은

바로 이들 19세기 "가짜 양반"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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