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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와 함께한 나날들

2015년 7월 6일, 기자 김태식은 끝났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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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본 세계유산위 회의장에서 마지막 랩탑질

 
내 페이스북에서 과거의 오늘을 훑으니 꼭 10년 전 2015년 7월 6일 자가 유난스럽게 요란스러운데,

그날 나는 독일 본에서 열린 제39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던가? 그 출장 취재를 접고선 귀국길에 오른 모양이라 그 이튿날 나는 회사로 출근했으니

그 출장 기간에 나는 인사발령이 나서 1998년 12월 1일인가, 그 이래 죽 몸담은 문화부 문화재 담당 기자 생활을 접고선 전국부로 갔으니

그에 얽힌 이야기들이야 여러 번 말했거니와 간단히 말해 당시 경영진에 찍혀 탈법적으로 문화부에서 무단 방출됐고, 이내 해고에까지 이르렀다. 
 

당시 회의장을 빠져나오는 한국대표단을 폰으로 급하게 촬영한 한 장면이라. 이마만 노출된 이가 당시 외교부 차관이자 대표단장 조태열. 지금의 외교부 장관이다. 그 바로 뒤 안경 쓴 이가 대표단 부단장 최종문 외교부 국장이다. 최 국장은 훗날 외교부 차관을 지낸다.

 
저 2015년 7월 6일이 나로서는 실은 일선 취재기자로서는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2023년 10월 16일 저 회사를 떠났으니, 1993년 1월 1일 이래 30년 9개월 반에 이르는 기자생활은 실상 저날 종지부를 찍었다. 

저 자리에서 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군함도 상징 일본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유산군이 논란 끝에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니,

기자 생활 쫑치는 이벤트 치고는 상당히 그럴 듯했다. 

지금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한테는 내가 어떤 기자로 기억될지는 모른다.

다 천차만별일 테고 호오가 극단으로 갈라질 터이고, 아무튼 그 내실이 어떠한 기자로 기억되었던지간에 나는 전직 기자로 기억되리라 본다. 
 

전날 저녁 라인강

 
그런 전직기자도 실상 기자생활은 저날 종언을 고했으니, 2년간에 걸친 해직기간과 전국부 복직, 그리고 곧이은 문화부장 2년, 그리고 한류기획단장(K컬처기획단장으로 중간에 명칭 변경) 3년을 더하기는 했지만,

2015년 7월 6일 이후 나는 내 이름으로 생산한 기사가 없다! 

뭐 그렇다 해서 후회는 없다.

이미 저 무렵이면 내가 기자생활에 지칠대로 지쳤을 때이며, 더 정확히는 신물이 넘어올 때였다. 

저날 본 현지에서 쓴 글에 아래가 있다. 
저 큰 덩치가 북쪽으로 흐르는 라인강 물결에 떠밀려 

열라리 속도를 내더니 

노을 속으로 전광석화처럼 사라졌다. 

읽은지 30년은 넘었을 헤르만 헤쎄 싯타르타던가?

그가 도를 깨치는 장면이 강물을 바라보며 강물은 흐르나 흐르지 않는다는 걸 보고서지 않았나 싶은데, 

같은 강물인데 헤세가 본 강물이랑 내가 본 강물이 다른가 보다. 

마음 한켠으로 울화가 남으니 말이다.

독일 시간 어제 숙소로 돌아와 짐 풀고 라인강변을 거닐며...

 

당시 세계유산위 회의장. 기자들이 몰린 맞은편 플로어에 일본 대표단이 있었다.

 
그런가 하면 다음과 같은 넋두리도 있다.


끝났습니다.

세계유산위가 하일라이트인 신규 세계유산 등재로 사실상 중요 일정을 끝남과 더불어 저도 이제 많은 것을 접고 돌아갑니다. 

연합뉴스 마크가 있는 노트북도 접었습니다.


저 노트북 말인데, 한류기획단장할 때 잠깐 전산부에서 빌려 쓴 적도 있었지만,

일선 취재기자 생활을 떠났으니, 진짜로 내 이름으로 기사를 쓸 일이 없었으니 기자 김태식은 2015년 7월 6일 끝났다. 

그렇다고 오늘이 유별나지는 않는다.

일기장 죽 훑다 보니 아 이날이 훗날 그리 기억되겠구나 하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저날이 이런 날로 기억될 줄 내가 알았겠는가? 지나고 보니 그리됐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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