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모산성 지하 목조 건축물
(문경=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산 30-3번지 일원 고모산성에서 확인된 5세기 무렵 신라시대 대형 지하목조건축물 중앙 부분. 상ㆍ중ㆍ하 3층으로 이뤄진 지하식 목재구조물은 평면장방형으로 전체 규모는 12.3m(남북방향)x6.6-6.9m이며 깊이는 4.5m(하층 1.4m, 중층 1m, 상층 2.1m)였다. 2007-06-12 << 문화부 기사참조 >>

5세기 신라 대형 지하목조건축물 발굴
송고 2007-06-11 19:11
문경 고모산성.."규모 최대, 상태 최상"12x6m에 3층 구조, 기능은 미상
(문경=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5세기 무렵 신라시대 대형 지하목조건축물이 문경의 한 고대산성에서 발굴됐다.
무엇인가를 저장하기 위한 창고나 저수지일 가능성도 제기되는 이 건축물은 지금까지 백제시대 유적에서만 몇몇 사례가 보고된 그 어떤 삼국시대 지하목조건축물보다 규모가 크고, 나아가 보존상태 또한 매우 양호하다는 점에서 한국목조건축술 연구의 획기적인 자료로 평가된다.

매장문화재 전문조사기관인 재단법인 중원문화재연구원(원장 차용걸)은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산 30-3번지 일원의 고모산(해발 231m)에 위치하는 고대산성인 고모산성 중에서도 서문지(西門址) 주변부를 중심으로 지난해 12월 이후 2차 추가연장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성 내부 삼각형의 넓은 평탄대지에서 상ㆍ중ㆍ하 3층으로 이뤄진 지하식 목재구조물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조사 결과 이 목조건축물은 땅을 파고 내려간 다음 가공한 목재를 이용해 수평방향 목재(들보)와 이와 연결되는 수직방향 목주(木柱.기둥)를 상호 교차해서 얽어 만들었으며, 벽체는 횡판목을 맞물리는 방식으로 축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위에서 내려다 보았을 때는 마치 바둑판식 격자 모양이며, 위로 올라갈 수록 규모는 더 커진다.
이 건축물은 평면 장방형으로 전체 규모는 12.3m(남북방향) x 6.6-6.9m에 이르며, 밑바닥 점토층에서 상층에 이르는 높이는 4.5m(하층 1.4m, 중층 1m, 상층 2.1m)로 측정됐다.

상층에서 확인된 목주 27개를 기준으로 할 때 거대한 지하 벙커를 연상케 하는 이 건축물은 남북 9칸, 동서 4-5칸이었다.
조사단장인 차용걸 충북대 교수는 "지금까지 이와 같은 삼국시대 지하 목조구조물은 공주 공산성, 대원 월평동 유적, 금산 백령산성, 대전 계족산성, 부여 궁남지와 관북리, 이천 설성산성 등지에서 확인된 적이 있으나
이들은 모두가 충남지방을 중심으로 한 백제시대 유적"이라면서 "따라서 이번 고모산성 지하 목조건축물은 신라시대 유적에서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차 원장은 이번 건축물의 축조시기는 "토기를 비롯한 출토유물로 보아 5세기 중반 이전이라고 판단된다"면서 "이로써 본다면, 이 유적이 백제의 유사한 목조건축물보다 연대가 빠르다고 생각되며, 규모 또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인 점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월평동 유적을 비롯한 백제시대 지하목조구조물은 크기가 대체로 한 변 5m 안팎인 방형이다.
특히 이번 고모산성 건축물은 다른 어떤 곳보다 지금 막 건축한 모습을 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보존상태가 완벽하다는 점에서 비상한 주목을 끌고 있다.
이곳에서는 고배(굽다리접시)를 비롯한 신라시대 토기 외에도 지름 2.5-5㎝인 용도 미상의 원형 토제품과 마치 구유를 닮은 배 모양 목기, 도르래로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는 목기, 평면 형태 'A'자형인 측량용으로 추정되는 목기가 출토됐다.
나아가 이번 조사에서는 이 지하건축물과 인접한 지점에서 평면 방형 형태이며, 네 벽면을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혀가는 형식으로 축조한 630년 무렵 저수지(남북 8.5-8.7m, 동서 9.0-9.5m, 깊이 2.2m)가 확인됐다.
이 저수지에서는 바닥에 '沙伐女 上'(사벌녀상)으로 판독되는 명문이 기록된 청동완과 원숭이로 추정되는 동물 얼굴 형상을 네 면에 표현한 청동장식품을 비롯한 다양한 유물이 쏟아졌다.


'사벌'(沙伐)은 지금의 경북 상주에 본부를 둔 신라시대 광역 행정구역 이름으로 지금의 도(道) 정도에 해당하며, 문경시 일대는 사벌주에 속했다.
고모산성은 2003년 문경시가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에 따른 문화유적 정비사업 일환으로 중원문화재연구원에 의뢰해 2005년 이후 연차 학술발굴조사와 복원사업을 벌이는 곳이다.
taeshik@yna.co.kr
배보다 배꼽이 커진 고모산성 지하목조건축물
송고2007-06-12 10:24
고모산성 지하목조건축물

(문경=연합뉴스) 경북 문경시 마성면 신현리 산 30-3번지 일원 고모산성에서 확인된 5세기 무렵 신라시대 대형 지하목조건축물. 상ㆍ중ㆍ하 3층으로 이뤄진 지하식 목재구조물은 평면장방형으로 전체 규모는 12.3m(남북방향)x6.6-6.9m이며 깊이는 4.5m(하층 1.4m, 중층 1m, 상층 2.1m)였다. << 문화부 기사참조 >>
보존처리·활용방안 "아무도 자신못해"
(문경=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11일 외부에 처음으로 공개된 문경 고모산성 지하목조건축물은 사진 속의 그것을 훨씬 능가하는 위용을 드러냈다.
험준한 소백산맥 계곡을 남쪽으로 흘러내리면서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영강이 동쪽 강안(江岸) 야트막한 산을 휘감아 돌면서 형성산 고모산이란 야산에 자리잡은 고모산성 또한 전체 길이는 1천300m 남짓하지만 그 높이와 두께는 요새를 방불할 만큼 거대했다.

자그마치 20m나 되는 높이로 곱게 다듬은 돌을 촘촘하게 쌓아올린 성벽에 마련된 문 중에서 서문(西門)을 통해 내부로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탁 트인 삼각형 대지의 저습지(低濕地.땅이 낮고 축축한 곳) 한가운데가 5세기 무렵 신라시대 거대 지하목조건축물이 차지하는 공간이다.
땅을 4.5m나 파고 들어가 평면 방형으로 조성했다는 이 목조물은 언뜻 보아 배를 연상케 했다. 12.3m(남북방향) x 6.6-6.9m(동서방향)에 이르는 네 벽면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기둥을 세우고, 벽체는 횡판목을 맞물리는 방식으로 만들었다. 그 내부에도 군데군데 기둥을 박았으며, 나아가 수평방향 거대한 목재(들보)들을 교차해 놓았다.
한데 현재 노출 상태를 기준으로 최상층에 드러난 들보는 한결같이 중앙을 향할수록 축 내려앉은 전깃줄 같은 모습을 연출했다.

이런 모습을 본 누군가가 대뜸 "노아의 방주 같네"라는 말을 뱉기도 했다. 지도위원 중 한 명인 심정보 대전 한밭대 교수 또한 이 목조건물이 선박 모티브와 흡사한 점을 지적했다.
이번 목조물에 흥분한 이는 고고학자보다는 역시 김동현 전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이나 윤흥로 문화재위원 같은 고건축 전공자들이었다.
윤 위원은 "이런 삼국시대 목조건축물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이 귀중한 유물을 어떻게 처리하고 활용하느냐 하는 문제를 심각히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 기능에 대해서는 저습지 자리에서 발견됐다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곡물 등의 저장고로는 적당치 않다는 의견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며, 그에 따라 물저장고가 아닐까 하는 의견 제시가 득세했다.

고고학 전공인 김세기 대구한의대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터키 이스탄불에 소재하는 동로마시대 지하 물저장고인 '예레바탄'(Yerebatan)을 비교사례로 제시하면서 물저장고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하지만 "물저장고로 보기에는 내부 목재가 저렇게 많이 필요할까"(심정보)라는 등의 반론이 나온 것을 비롯해 어느 누구도 자신있게 이 목조물 용도를 확신하지는 못했다.
이런 용도 논란을 뒤로 하고 이날 현장설명회는 자연히 이렇게 출현한 지하목조물을 어떻게 보존처리하며 활용할 것인지 하는 문제로 옮겨갔다.

같은 건축학도임에도 김동현 자문위원은 "완전한 해체철거와 보존처리"를 제안했으나, 윤흥로 위원은 "돔과 같은 시설물을 설치하는 현장 전시관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출신인 조유전 토지박물관장은 "현 상태 보존이 가장 좋겠지만 이를 위한 공정들이 오히려 지금의 유적을 파괴할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면서 "혹시 해체 철거를 한다 해도, 현장에는 지금과 똑같은 모형 목조물을 설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설명회가 도출한 거의 유일한 합의점이라고 하면 "배(발굴비) 보다 배꼽(처리비용) 더 클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현장을 참관한 목재보존처리 전문가인 김익주 경담문화재연구소장은 "목재보존처리에만도 5년 이상이 걸린다"고 말했다.
이런 소식을 접한 경북도와 문경시 관계자들은 "(목조물 보존처리 문제는) 이젠 우리 손을 떠난 것 같다"면서 "문화재청이 나서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욱 시급한 문제는 당장 지하목조물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였다.
발굴단인 중원문화재연구원 차용걸 원장(충북대 교수)은 올해 발굴조사비가 이미 다 집행됐으므로 오는 19일로 조사를 만료하고 현장에서 철수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추후 조사가 재개되고, 보존처리 방안이 확정될 때까지는 이 목조건축물은 응급조치를 끝내고는 현장에 그대로 보존될 예정이다. 지난 천년 이상을 그랬듯이 목조건축물이 제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안정된 여건은 뻘흙과 수중이다.
발굴현장 인근에 마련된 임시 천막에서 설명회가 한창 진행되는 사이에도 발굴단 조사인부들은 30도가 넘는 폭염에 그대로 노출된 목조물의 뒤틀림을 방지하기 위해 쉴새없이 분무기로 물을 뿌려댔다.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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