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문문 정기학술대회 보도자료>
“벼슬 자리 주십시오” 백제 편지목간 공개
판교 고려 불상ㆍ의자왕 외손 묘지명도 공개
“所遣信來 以敬辱之 於此貧薄 一无所有 不得仕也 莫瞋好邪 荷陰之後 永日不忘”
“보내주신 편지 삼가 잘 받았습니다. 이곳에 있는 이 몸은 빈궁하여 하나도 가진 게 없으며 벼슬도 얻지 못하고 있나이다. 그러나 좋고 나쁨에 대해서 화는 내지 말아주십시오. 음덕을 입은 후 영원히 잊지 않겠나이다.”
가난한 어떤 사람이 권력자에게 벼슬자리를 구하는 편지다. 이 짧은 편지는 뜻밖에도 나무를 깎아 종이처럼 사용한 목간(木簡)에 붓글씨로 썼다. 더욱 놀랍게도 이 편지를 쓴 사람은 백제가 사비(부여)에 도읍하던 시기(538~668)에 그 서울에 살던 사람이다.
이처럼 벼슬자리를 청탁하는 내용을 담은 백제시대 편지목간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대표적인 SNS 매체인 페이스북에 기반을 둔 학술문화운동단체 ‘문문(文文. 문헌과 문물. 회장 홍승직. 순천향대 중문과 교수)이 오는 25일 오전 11시 충남 부여군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새로 만난 문물文物, 다시 보는 문물文物’을 주제로 하는 제2회 정기학술대회를 개최한다.
이번 학술대회는 주제가 표방하듯이 최근 새롭게 발굴조사 등을 통해 알려졌거나, 기존에 알려진 자료라 해도 새로운 각도에서 접근한 참신한 연구성과 5편이 공개된다.
백제 편지 목간 외에도 성남 판교 신도시 개발과정에서 발굴한 고려시대 비로자나불상 1구와 지장보살상 2구가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제대로 모습을 드러내며, 당으로 끌려간 백제 의자왕의 외손 묘지명(墓誌銘)이 소개된다.
이와 함께 서울 광진구 아차산 일대의 고구려시대 보루(堡壘) 중 하나인 홍련봉 제2보루에서 2005년 발견된 토기 접시 바닥의 글자는 연대의 하나인 ‘庚子(경자)’가 아니라, 오줌통을 가리키는 명칭인 ‘虎子(호자)’임을 규명한 연구도 발표되며, 동양식 천문도와 서양식 천문도를 혼합해 조선에서 만든 영국 케임브리지 휘플 박물관 소장 ‘신구법천문도(新舊法天文圖)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연구성과도 공개한다.
백제편지 목간
문제의 목간은 2010년 부여 구아리 319 유적에 대한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의 발굴조사에서 다른 백제시대 목간과 함께 출토됐다. 목간은 긴 판자 형태다. 아래쪽 일부가 없어졌지만 완형에 가깝다. 크기는 길이 25.2㎝, 폭 3.5㎝, 두께 0.3㎝. 이에 적힌 글자는 한 구절이 4글자인 4구체이며, 앞면에 4언 3구가 있고 뒷면에 4언 5구가 확인된다.
이를 발굴하고 판독한 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심상육 선임연구원과 김영문 전 서울대 중문과 강사는 이를 결국 ‘부치지 못한 편지’로 간주했다. 이들은 그 근거로 목간 두께가 비교적 얇고, 문자 크기가 일정하지 않으며, 기록 방식이 일정하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종이 또는 천에 적을 내용을 나무에 연습한 편지의 초고(草稿)일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첨부 사진 참조)
연락처 심상육 010-XXX-XXXX
성남 판교 출토 고려 불상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2007~2008년 성남 판교지구 10구역 다 지점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남쪽을 바라보는 건물터와 관련 부속시설 등이 조사됐다. 이 건물터에서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 유물이 집중 확인되고, 나아가 비로자나불상 1구와 지장보살상 2구, 그리고 금동소탑(小塔) 등이 확인됐다. 발굴조사단 일원인 정훈진 연구원은 이런 유물이 나온 건물은 사찰에 달린 작은 암자였을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불교미술사학자인 강희정 서강대 동아연구소 HK교수는 비로자나불상은 12세기 후반 작품인 반면, 합장한 모습의 보살상 2구는 단언은 힘들지만 지장보살로 판단되며, 제작 시기는 12세기 전반 작품으로 보았다.
고려시대 불상으로는 드물게, 완벽한 형태로 발굴된 이들 불상과 보살상은 최근 재단이 발간한 이 발굴보고서에 수록되기는 했지만, 그에 대한 상세한 미술사적인 검토가 이뤄지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첨부사진 참조)
연락처 정훈진 010-XXX-XXXX / 강희정 010-XXX-XXXX
의자왕 외손 이제(李濟) 묘지명
중국 시안시 남쪽 장안(長安)박물관이 소장한 이제 묘지명은 검푸른 빛이 도는 청석(靑石)으로 만들었고, 덮개돌인 개석(蓋石)은 없어지고 몸통인 지석(誌石)만 남았다. 장방형인 이 지석은 가로 65cm, 세로 65.3cm, 두께 15cm. 글자는 가로 30행, 세로 30행으로 칸을 치고 그 안에 단정한 해서체로 썼다. 중간중간 빈칸이 있어 실제 글자수는 749자. 묘지명에 의하면 글은 지은 사람은 이잉숙(李仍叔), 글씨를 쓴 사람은 주한빈(周漢賓)이다.
묘지명에 의하면 묘지 주인공 이제는 당나라 경종(景宗) 보력(寶歷) 원년(825) 정월 10일에 향년 50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므로 당나라 대종(代宗) 대력(大曆) 11년(776)에 태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가 의자왕 후손, 특히 외손이라는 점은 묘지명에는 직접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묘지명을 소개한 김영관 제주대 사학과 교수는 의자왕 증손녀로 당 황실의 종실에 시집간 태비(太妃)인 부여씨(扶餘氏)의 묘지명 내용을 종합하면 이제가 바로 의자왕의 외손임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2009년 역시 김 교수가 국내에 소개한 태비 부여씨 묘지명과 이번 묘지명을 아울러 고려하면 이제는 부여 태비의 손자인 이망지의 아들로 태어나서 문관으로 활동하면서 종실 일을 관장하는 종정 소경을 역임하고 사망 무렵에는 외재종질인 봉상절도사 왕승원 휘하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제 묘지명이 이제의 활동뿐만 아니라 의자왕의 증손녀 부여태비 후손들의 가계와 활동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라면서 “이제의 활동은 백제 외손들이 절도사가 난립하던 혼란기인 당 말기까지도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고 평가했다.(사진참조)
연락처 김영관 011-XXX-XXXX
제2회 문문(文文) 정기학술대회 개최
1. 장소 : 충남 부여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연수원강당
2. 시기 : 2013.5.25(土) 10:40~17:00
3. 주제 : ‘새로 만난 文物, 다시 보는 文物’
4. 순서
11:00~11:30 김영관(제주대 사학과 교수) : 의자왕 외손 이제(李濟) 묘지명(墓誌銘)에 대한 기초적 검토
11:30~12:00 김태식(연합뉴스 문화부 기자) : 홍련봉에 남은 고구려의 두 아들〔子〕- 경자(庚子)와 호자(虎子) 사이에서
13:30~14:00 안상현(한국천문연구원 선임연구원) : 다시 보는 케임브리지 휘플 박물관 소장 한국제 신구법천문도
14:00~14:30 정훈진(한국문화재보호재단 연구원)/ 강희정(서강대 동아연구소 HK교수) : 성남 판교동 유적 10구역 건물지와 고려 불교 조각
14:30~15:00 심상육(부여군문화재보존센터 선임연구원)/김영문(전 서울대 중문과 강사) : 부여 구아리 319번지 유적 출토 백제목간
15:30~17:00 종합토론(사회 정승혜. 수원여대 교수)
학회 연락처
회장 홍승직 010-XXX-XXXX
편집위원장 기호철 010-XXX-XXXX
총무 김태식 010-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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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시피 이 학술대회는 여러 모로 획기라 할 만한 발표 혹은 보고가 있었다. 부여 구아리 목간은 그 이전 모 학회가 판독이라는 것을 했지만, 처참한 수준이라 모조리 그것을 바로잡았고, 지금 꽤나 유명세를 타는 판교 불상은 처음으로 공식 데뷔를 했으며, 고구려의 80년에 걸친 한강유역 지배를 말해주는 증거로 거론된 홍련봉 보루 토기 바닥 글씨는 경자庚子라는 연도가 아니라 호자虎子라는 오줌통이었다. 백제 의자왕 외손 이제李濟라는 사람 묘지명 발견 보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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