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극쟁이들 하는 말을 들으면 새로운 공연이 오를 때는 대개 몇 회 이상 한 다음에 가야 가장 안정된 공연을 본다 한다.
아무래도 처음 올려서 몇 번 돌려 봐야 배우끼리 호흡도 맞고 여타 음향 장비며 하는 것들이 제대로 구동되기 시작하기 때문일 것이다.
책도 마찬가지라서 가장 안정된 판본은 대개 2쇄 이후다.
초판 1쇄는 아무리 내가 오타 비문 등을 바로 잡는다 해도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돌발하기 마련이라 저자가 가장 애정을 기울여서 교정하는 쇄가 2쇄다.
2쇄를 넘어가면?
모든 저자가 마찬가지일 텐데, 거개 책이 나오면 하도 진을 빼 버려서 쳐다보기도 싫다.
그래도 2쇄에 들어간다면 나름 정심성의껏 오류를 바로잡아 2쇄에 반영하는데 3쇄 이후는?
건성건성이다.
너 같으면 그거 다시 쳐다 보고 싶겠니?
그렇다면 목판은 어떨까?
목판에 글이나 그림을 새겨 바로 찍어내서 제대로 나오는 꼴을 못 본다.
잉크가 제대로 먹어야 하고, 제반 여타 판각 과정에서 빚어진 여러 애로는 몇 번을 갈고 닦아야 제 맛을 내게 되는데
갓 새긴 목판을 처음, 그리고 두 번째 세 번째 찍어낸 것들은 판각이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지닐 지 모르지만, 거대 10회 이상은 찍어야 제대로 나온다.
초반에 찍어내는 것들은 버리는 셈 쳐야 한다.
꼭 몇 번이랄 것도 없다.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오래도록 근무하며 이런 데 다년간 경험이 있는 윤용현 박사 이야기를 들으니
"제대로 그걸 실험해 본 적은 없지만 체험으로 해 보니 10회 정도 이상은 해야지 농도가 잘 나오는 걸로 기억한다"고 말한다.
앞서 소개한 후쿠사이 후지산 파도 일렁일렁 출렁출렁은 하도 인기가 있어서인지 대략 8천 장 정도를 찍었다 했는데 모르긴 해도 100번 이상 지나가면 이미 마모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나서 제대로 찍혀나왔을지조차 의심을 사거니와 천 번을 넘어간다?
다 닳아서 제대로 찍혔을지도 의문이다.
저 첨부한 도판은 아마 후가공을 하지 않았나 하는 의심을 산다.
목판이 저리 나오기는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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