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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DNA 분석 통해 1,600년 전 725km 떨어진 곳에 묻힌 남매 재회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10.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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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시대 히스파니아에서 약 725km 떨어진 곳에 묻힌 두 남매가 고대 DNA 분석을 통해 다시 연결된 모습을 묘사한 그림. (삽화: 작가 작. 출처: Arkeonews)



고대 스페인에서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묻힌 두 남매가 약 1,600년 만에 DNA 분석을 통해 연결되었다.

이들의 놀라운 이야기는 로마의 지배가 이후 게르만족 이주보다 이베리아 반도 인구에 더 큰 영향을 미쳤음을 밝히는 중요한 유전학 연구 일부다.

한 여성은 로마 시대 말기 히스파니아에서 사망해 로마 제국 주요 도로 중 하나인 비아 아우구스타Via Augusta 옆에 묻혔다.

그녀의 무덤에서는 다뉴브 강과 흑해 지역 전통과 관련된 유리 용기와 두 개 금핀이 발견되었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고대 도시 아우구스타 에메리타Augusta Emerita에는 그녀의 남자형제 유해가 안치된 또 다른 무덤이 있었다.

1,6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그들의 가족 관계는 그들이 남긴 유해에만 보존된 채 감춰져 있었다.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묻힌 남매는 다시는 연결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 세기 후, 고대 DNA 분석을 통해 거리도 시간도 지울 수 없던 그들의 연결고리가 마침내 드러났다.

이들의 이야기는 로마 지배 시대와 그 후 수 세기 동안 이베리아 반도 지형 변화를 살핀 새로운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 중 하나다.

이 연구는 Cell에 발표되었다.

고대 DNA로 연결된 두 남매

연구진은 스페인 서부 메리다Mérida (현재의 아우구스타 에메리타)의 로스 블라네스 공동묘지Los Blanes cemetery에서 남매 유해를 확인했다.

그의 유해는 서기 364년에서 535년 사이 것으로 추정한다.

그의 누이는 스페인 북동부 비아 아우구스타 도로변에 위치한 호스탈롯-일둠Hostalot-Ildum 유적에 묻혔는데, 그녀의 매장지는 서기 257년에서 409년 사이로 추정된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두 사람이 남매 관계임이 밝혀졌고, 둘 다 중부 및 북유럽 인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조상을 뒀음이 드러났다.

연구진은 이들이 급격한 정치적 변화 시기에 이베리아 반도에 도착한 1세대 이주민에 속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한다.

특히 여성 무덤은 매우 중요한 고고학적 맥락을 제공한다.

다뉴브-폰토스 전통Danubian-Pontic traditions과 관련된 금핀은 로스 블라네스Los Blanes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사하여, 상당한 거리에 떨어져 있던 공동체 간 문화적 연결고리를 시사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 남매는 고대 DNA 기록에서 1촌 관계 친척 중 가장 먼 지리적 거리에 묻힌 사례로 밝혀졌다.

이들의 관계는 고고학적으로 아직 답할 수 없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들은 함께 이동하다가 다른 길로 접어든 것일까, 아니면 히스파니아로 향하는 대규모 인구 이동 중에 헤어진 것일까?

연구진은 여성이 남쪽으로 이동하는 도중 사망했고, 남자형제는 아우구스타 에메리타를 향해 계속 이동했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들의 정확한 이동 경로는 여전히 불분명하며, 현재로서는 함께 이동했는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로마 시대 히스파니아의 카스테욘Castellón 인근 호스탈롯-일둠과 메리다의 로스블라네스에 약 725km 떨어진 곳에 묻힌 남매가 확인되었다. 이미지에는 두 매장지에서 출토된 금핀도 함께 나타난다. 출처: Cell, Carrión et al. / 진화생물학연구소(IBE).



로마 제국을 가로지르는 여정

로마의 도로망은 이베리아 반도 전역을 이동하는데 남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연구자들은 이들의 매장지 사이를 걸어서 이동하는 데 약 24일, 말을 타고 이동하는 데 약 14일이 걸렸을 것으로 추산한다.

여성의 유골이 길가 숙박 시설 근처에 묻혔다는 사실은 로마 제국의 권위가 약해진 후에도 로마 지배하에 건설된 기반 시설이 여행객들에게 계속해서 유용하게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이동성은 특히 5세기에 수에비Suebi족, 반달족Vandals, 알란족Alans, 서고트족Visigoths이 이베리아 반도에 진출하여 새로운 정치 중심지를 세웠을 때 중요했다.

하지만 이 남매 이야기는 훨씬 더 큰 인구 통계학적 그림의 일부일 뿐이다.

이들의 유전적 연결은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 걸친 개인의 이동을 보여주는 데 도움이 되며, 더 광범위한 연구는 다양한 이주 물결이 이베리아 반도 인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밝혀준다.

이베리아 반도 전역 31개 고고학 유적에서 발굴된 243개 고대 게놈을 분석한 연구의 그래픽 요약. 이번 연구 결과는 로마 시대에 동부 지중해와 북아프리카에서 유입된 이주, 그리고 이후 게르만족의 이주가 이 지역의 유전적 역사를 어떻게 형성했는지를 보여준다. (사진 제공: Cell, Carrión 외 / 진화생물학연구소(IBE))

 

로마의 지배가 이베리아 반도의 유전적 지형을 변화시켰다

파블로 카리온(Pablo Carrión)과 그의 동료들이 이끄는 국제 연구팀은 이베리아 반도 전역 31개 유적에서 발굴된 243명 고대 유골에서 유전자 데이터를 추출했다.

연구팀은 이 결과를 기존에 발표된 고대 유전체 데이터와 비교하여 서기 100년경부터 800년경까지의 인구 변화를 조사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로마 지배는 동부 지중해와 북아프리카로부터의 이주를 통해 히스파니아에 상당한 유전적 다양성을 가져왔다.

한 조상 분석에서 조사된 로마 시대 인물 66명 중 55명이 동부 지중해와 관련된 유전적 조상을 지녔다.

연구진은 특히 에페소스Ephesus, 페르가몬Pergamon, 그리고 스미르나Smyrna와 같은 고대 도시와 관련된 지역을 포함해 로마와 비잔틴 제국 시대 서부 아나톨리아 인구와 강한 연관성을 확인했다.

북아프리카 혈통 또한 특히 이베리아 반도 남부와 중부 지역에 널리 퍼졌다.

남동부 지역에서 발굴된 로마 시대 인물 34명 중 33명에서 북아프리카 혈통이 확인되어 서부 지중해 전역에 걸친 광범위한 연결고리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결과는 로마 시대 히스파니아가 로마 이전 시대보다 훨씬 더 유전적으로 다양했음을 시사한다.

무역, 제국 행정, 군사 활동, 그리고 인구 이동은 이베리아 반도를 지중해 세계 먼 지역들과 연결했다.

특히 주목할 만한 사례는 루세나Lucena 근처 코르티호 코라초Cortijo Coracho에 있는 초기 기독교 공동묘지에서 발견되었다.

연구진은 4대에 걸친 가계도를 재구성하여 해당 공동체 내에서 이베리아, 동부 지중해, 북아프리카 지역 조상을 확인했다.

이번 발견은 초기 기독교 전파 시기에 북아프리카와 남부 히스파니아 간 긴밀한 인구학적 연결고리를 보여주는 증거를 제공하지만, 유전적 증거만으로는 종교적 신념의 전파 경로를 규명할 수는 없다.

로마 및 초기 중세 이베리아 지역 주요 고대 DNA 연구에서 발굴된 이른바 '수에비아 공주'들Suebian princesses 매장지를 묘사한 예술 작품 복원도. 사진 제공: 호아킨 수아레스.

 

게르만 지배자들이 도래했지만, 인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번 연구는 또한 게르만 왕국의 도래가 필연적으로 대규모 인구 교체를 초래했다는 기존의 가정에 이의를 제기한다.

로마의 권위가 약해짐에 따라 이베리아 반도 전역에 새로운 정치 세력이 등장했다.

수에비족은 북서쪽에 왕국을 세웠고, 서고트족은 결국 이 지역 상당 부분을 장악하게 되었다.

유전학적 증거는 중부 및 북유럽 계통 조상을 지닌 이주민들이 히스파니아에 도달했음을 확인한다.

연구진은 이주 시기의 164명 중 53명에게서 이러한 조상을 발견했는데, 특히 게르만족의 물질문화와 고위층 매장지가 있는 유적에서 이러한 특징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히스파니아-로마 전체 인구는 대체로 연속성을 유지했다.

이주민과 기존 공동체는 함께 살았고, 유전학적 증거는 혼인을 통해 점차 그들의 조상이 융합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양상은 로마 지배 이후 브리튼 섬에서 나타난 인구 변화 양상과는 대조적이다.

브리튼 섬의 경우, 이전 유전학 연구에서 훨씬 더 광범위한 인구 변화가 기록되었다.

따라서 연구진은 정치적 지배와 인구 교체가 반드시 동시에 일어난 것은 아니라고 결론지었다.

이베리아 반도에서 로마 제국과의 연관성과 관련된 유전적 변형은 게르만 왕국의 부상과 함께 일어난 변화보다 훨씬 더 광범위했다.

저자들은 그럼에도 고고학적 기록, 특히 철기 시대, 로마 공화정 시대, 그리고 북부 이베리아 지역에 중요한 공백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이베리아 반도의 완전한 인구 변천사를 재구성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고대 DNA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Institut de Biologia Evolutiva (IBE)

Carrión, P., Olalde, I., et al. (2026). Contrasting demographic impacts of Roman colonization and early medieval migrations in the Iberian Peninsula. Cell. https://doi.org/10.1016/j.cell.2026.09.052

 

DNA가 지니는 한계는 분명하지만, 저와 같은 놀라운 사실을 DNA 아니면 어느 것이 증명하겠는가?

DNA는 고고학 혁명이다. 

아래 또한 그 혁명적 사례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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