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wo Viking relatives reunited in Denmark after 1,000 years
AFP 6/9/2021
DNA 분석을 통해 그 망망한 북해를 사이에 두고 덴마크와 영국에서 각각 발견된 바이킹 전사 두 사람이 친족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이 뉴스는 그 파장이 실은 엄청나다.
그럼에도 이 소식이 제대로 국내 언론에서는 다뤄지지 못한 채 외국 언론에서만 논급하고 지나갔으니, 이 소식을 나는 외우 이정우 선생을 통해 접했다.
고고학 혹은 과학 관련 언론에서는 매우 비중있게 취급한 사안이다.
그도 그럴 것이, 예컨대 이는 견준다면 한반도와 일본열도에서 삼국시대에 해당하는 인골을 각기 발굴했는데, 인골에 대한 DNA 분석을 해 보니 그 두 사람이 한 가족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과 같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나, 덴마크가 바이킹 본선 중 한 곳이므로, 아마도 덴마크에 근거지를 둔 바이킹 어느 가족 중 대다수는 덴마크 현지에 남고, 그 구성원 누군가가 무슨 일로 약탈을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잉글랜드를 침탈한 바이킹 침략군 일원이었는지 모르나, 잉글랜드로 들어가 정착했는지 아니면 일시 체류 상태에 그런 일을 당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모종의 이유로 죽어 거기에 묻힌 모양이다.
더구나 이렇게 각기 두 지역에서 발견된 바이킹 인골들이 천년 만에 극적으로 해후했다니,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다 하겠다.
문제의 두 바이킹 중 한 남자는 11세기에 20대 한창 나이에 잉글랜드에서 죽었으니 사망 원인은 인골 분석을 통해 머리에 난 상처가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아마 전투라든가 하는 과정에서 입은 상처로 사망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의 주검은 옥스퍼드 공동묘지에 묻혔다.
그와는 같은 가족 일원인 다른 남자는 덴마크에서 50대에 죽었다. 그의 뼈에서도 전투에 참여해 입은 상처가 발견됐다.
결국 두 사람 모두 전사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덴마크국립박물관 여성고고학도 Jeanette Varberg는 AFP 취재에 응해서는 "이는 대단한 발견이니 시공간을 넘나드는 한 가족의 이동의 실체를 추적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국에서 발견된 20대 사망 바이킹 전사 유골 150 조각은 덴마크박물관에서 두 시간 정도 걸쳐 다시 조립됐다.
이들 유골은 향후 3년간 영국 옥서퍼드샤이어 박물관 Oxfordshire Museum에서 3년간 대여하기로 했다.
역사를 보면 덴마크 바이킹들은 8세기 후반 이래 줄기차게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를 침략했다. 영국에 죽어 묻힌 젊은 바이킹 전사는 앞서 추론했듯이 침략 과정에서 죽었을 수도 있지만, 그가 발견된 지점이 공동묘지이며 당시 잉글랜드 왕인 Ethelred the Second 칙령으로 조성된 것이며, 그런 그가 1002년, 잉글랜드에 있는 모든 바이킹은 죽이라고 명령한 사실이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때 처형됐을 수도 있다.
저 둘이 친척임은 확인했으나,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인지는 밝혀낼 수 없었다. 형제일 수도 있고 할아버지와 손자일 수도 있으며, 삼촌과 조카일 수도 있다.
각기 진행되었을 DNA 검사가 어떻게 조합되었는지도 신통방통하다.
하지만 저렇게 각기 다른 곳에서 죽은 저들이 유골 형태로 각기 발견됐다는 사실만한 기적이 있겠는가?
'NEWS & THESIS'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화재 사진작가들이 포착한 경주 (1) | 2021.06.23 |
---|---|
또 다른 희생을 요구하는 생태복원, 태즈메이니아 데블의 경우 (1) | 2021.06.22 |
비엔나대학 식물원에 헌정한 한국산 농기구 호미 homi (0) | 2021.06.16 |
가야무덤이라 해서 팠더니... (0) | 2021.06.14 |
해좌전도海左全圖, 19세기 말 조선전도 (0) | 2021.06.1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