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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time archaeology

크로아티아 연안 비잔틴 난파선서 기록적인 황금 유물 수습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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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아티아 연안 비잔틴 상선 난파 유적을 조사 중인 수중 고고학도들. 사진 제공: 크로아티아 문화재보존연구소

 
크로아티아 믈례트Mljet 섬 인근에서 발견된 비잔틴 난파선에서 600그램이 넘는 금, 보석이 박힌 허리띠 장식, 황실 동전, 그리고 제국 최고위 관리 중 한 명이 소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희귀한 인장 반지가 발견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배가 7세기 말 또는 8세기 초에 고위 군사령관, 황실 행정관 또는 외교 사절과 같은 고위 인사를 태우고 상당한 양의 상업 화물commercial cargo을 운반하던 중 침몰한 것으로 추정한다.
 

크로아티아 연안 비잔틴 상선 난파 유적을 조사 중인 수중 고고학도들. 사진 제공: 크로아티아 문화재보존연구소


크로아티아 문화재보존연구소는 이 난파선을 지중해에서 발견된 비잔틴 시대 수중 고고학 유적 중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로 평가한다.

고고학 조사를 이끄는 이고르 미홀예크Igor Miholjek에 따르면, 세척 및 복원된 금 유물 무게는 600그램이 넘으며, 이는 지중해 난파선에서 발굴된 금 중 가장 많은 양이다.

에메랄드, 루비, 진주로 장식한 금 버클

난파선은 크로아티아 남부 아드리아 해안 믈례트 섬 폴라체Polače 근처에 있다.

2015년 이래 고고학 조사가 있어, 이후 크로아티아 문화재보존연구소 수중고고학부에서 9차례에 걸쳐 수중 발굴 작업을 진행했다.
 

에메랄드, 루비, 진주가 박힌 금 버클. 사진 제공: 크로아티아 문화재보존연구소


가장 주목할 만한 발견으로는 에메랄드, 루비, 진주로 장식된 금 벨트 세트 4점, 금 버클, 그리고 장식용 벨트 끝부분이 있다.

이들은 단순한 개인 장신구가 아니었다.

비잔틴 제국 고위 관리들이 착용한 정교한 가죽 벨트 일부였으며, 그들의 의복과 장신구는 제국 내 지위를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였다.

크로아티아 문화재보존연구소는 이처럼 호화로운 벨트 장식이 지중해 수중 고고학 유적에서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장식의 존재는 난파선이 단순히 상인과 대량 상품만을 싣고 다니던 평범한 무역선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난파선에서 인양된 금은 비잔틴 제국 엘리트 계층의 물질문화를 보여주는 매우 이례적인 유물이다.

보석, 정교한 금속 세공 기술, 그리고 의례적 성격은 이 유물들이 제국의 정치 또는 군사 권력층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크로아티아 연안 비잔틴 상선 난파 유적을 조사 중인 수중 고고학도들. 사진 제공: 크로아티아 문화재보존연구소


황실 권력과 연결된 금반지

가장 중요한 유물 중 하나는 헤라클리우스Heraclius 황제가 세운 왕조의 황제 초상을 새긴 금 인장 반지.

연구자들은 이러한 반지가 비잔틴 정부나 군부 최고위층 인사만이 소유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소유자는 황실 문서에 인장을 찍을 권한을 지녔을 가능성이 있으며, 따라서 이 반지는 개인 신분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정치적 권위 상징이기도 했다.

이 유물은 외교 선물로 증정되었거나, 황실 업무차 여행 중이던 고위 관리 개인 소유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크로아티아 문화재보존연구소 수중고고학부 부장인 파블레 두곤지치Pavle Dugonjić는 로이터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황제 초상이 새겨진 반지를 통해 “아무나 착용할 만한 것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 반지는 침몰 당시 배에 고위 인사가 탑승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금 벨트와 보석류는 같은 승객, 수행단, 또는 함께 여행하던 여러 관리 소유였을 가능성이 있다.
 

크로아티아 연안 비잔틴 상선 난파 유적에서 건진 도기들. 사진 제공: 크로아티아 문화재보존연구소


황제 주화, 침몰 시기 추정에 도움

고고학들은 또한 7세기 후반 헤라클리우스 왕조Heraclius dynasty 네 황제가 발행한 금화를 발견했다.

주화는 정확한 연대 측정을 위한 중요한 증거를 제공하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이를 통해 침몰 시기를 7세기 후반 또는 8세기 초로 추정할 수 있었다.

이 시기는 비잔틴 제국이 심각한 정치적, 군사적 압박에 시달리던 시기였다.

한때 동부 지중해 지배 세력이었던 비잔틴 제국은 영토를 잃고 있었으며, 멀리 떨어진 연안 지역 간 통신망 유지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압력에도 믈례트호는 사람과 사치품, 그리고 상업 화물이 아드리아해 해상 항로를 통해 계속 이동했음을 보여준다.

크로아티아 연구진과 공동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스탠퍼드 대학교 고고학 교수 저스틴 라이드방거Justin Leidwanger는 이 유적을 "당대 가장 중요한 난파선"이라고 평가했다.

라이드방거 교수는 이 난파선이 후기 로마 시대에서 중세 유럽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지중해 해상 연결망이 어떻게 유지되었는지, 혹은 단절되기 시작했는지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증거를 제공한다고 강조한다.

크로아티아 연안 비잔틴 상선 난파 유적을 조사 중인 수중 고고학도. 사진 제공: 크로아티아 문화재보존연구소

 
상업 화물을 실은 호화로운 항해

금제 유물이 가장 큰 주목을 받았지만, 이 배는 상당한 양의 상업 화물도 싣고 있었다.

잠수부들은 암포라, 무역용 저울trade scales, 상아 토큰ivory tokens, 그리고 그릇, 접시, 주전자, 기타 식기류를 포함한 도자기를 인양했다.

이러한 유물들은 이 항해가 엘리트층 여행과 일반적인 무역 또는 물류 활동이 결합된 형태였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혼합은 여러 가능성을 제기한다.

고참 승객은 상선에 탑승해 공무를 수행 중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또는, 그 배는 외교 또는 군사 임무와 관련된 물자, 대금, 귀중한 선물 등을 운반하고 있었을 수도 있다.

스탠퍼드 대학교 연구진은 현재 암포라와 도자기[자기가 아니라 도기인듯] 화물을 연구하여 이 용기들이 어디에서 제작되었는지, 무엇을 실었는지, 그리고 아드리아해에 도달하기 전에 어떤 항구에 기항했는지를 밝히고 있다.

전문가들인 팔코 다임Falko Daim과 레반테 사무Levante Samu는 금제 허리띠 세트의 제작 기술과 장식 문양을 조사하며, 화폐학자 젤리코 데모Željko Demo는 황실 동전을 분석한다.
 

크로아티아 연안 비잔틴 상선 난파 유적에서 드러난 암포라. 사진 제공: 크로아티아 문화재보존연구소


배는 피난처를 찾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믈레트는 동부 지중해와 서부 지중해를 연결하는 주요 해상 항로 중 하나에 자리한다.

콘스탄티노플, 아드리아해 연안, 이탈리아를 오가는 선박들이 정기적으로 이 해역을 통과했다.

연구진은 비잔틴 선박이 침몰하기 전에 폴라체 만에 피난처를 찾으려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한다.

주변 경관으로 둘러싸인 이 만은 수 세기 동안 악천후 시 선박의 천연 피난처 역할을 했다.

항구 옆에 건설된 후기 고대 시대 웅장한 궁전 단지는 그 중요성을 더욱 강화했다.

안전한 정박지, 기념비적인 건축물, 그리고 전략적인 해상 통로에 위치한 덕분에 폴라체는 아드리아해를 건너는 선박들의 자연스러운 기항지가 되었다.

비잔틴 선박이 안전한 곳에 도착하지 못한 정확한 이유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갑작스러운 폭풍, 항해 실수, 구조적 결함 또는 다른 해상 사고로 배와 그 안에 타고 있던 귀빈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았을 가능성이 있다.
 

크로아티아 연안 비잔틴 상선 난파 유적을 조사 중인 수중 고고학도들. 사진 제공: 크로아티아 문화재보존연구소

 
19년간의 수중 탐사

이번 발견은 믈례트 섬 주변에서 진행된 대규모 수중 고고학 프로그램 일환이다.

지난 19년간 미홀예크와 두곤지치가 이끄는 연구팀은 섬 주변에서 이전에 알려지지 않은 난파선 20척을 발견했다.

이 난파선들은 기원전 2세기부터 16세기까지의 시대를 아우르며, 지중해 항해와 무역에서 믈례트 섬이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이번 비잔틴 난파선은 희귀하고 귀중한 화물을 실었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금으로 된 장식품, 황실 동전, 인장 반지 등은 지중해 역사에서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시기 중 하나에 아드리아해를 오간 사람들 흔적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 난파선은 로마 제국 몰락으로 단절된 바다의 모습이 아니라, 황실 관리들과 귀중품, 상업 상품들이 여전히 장거리 해상 무역망을 통해 오간 세상을 보여준다.

아드리아해 해저로 사라진 지 1,300년이 넘었지만, 그 배에 실린 화물들이 차례로 사람들 신원을 밝혀주고 있으며, 비잔틴 제국의 지중해를 하나로 묶어준 위태로운 무역로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출처: Hrvatski Restauratorski Zav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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