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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Death Mask로서의 신라 금관 금동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0.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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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왕경추진단이 오늘 3일 공개한 경주 황남동 120-2호분 발굴성과 매장주체부 유물배치 양상이다. 

허리춤 이상 얼굴까지 노출한 모습이어니와, 저 중에서도 금동관이 확인된 얼굴 부분만 확대하면 다음과 같다. 

 

 

 

 

 

 

우리가 유의할 점은 태환이식太環耳飾이라 하는 굵은테귀고리가 출토하는 지점이다. 화면 바라보는 사람 기준 오른쪽은 원래 위치에서 이탈해서 나뒹군 느낌이 있는 반면, 왼편 귀걸이가 비교적 원래 위치를 유지했다고 본다. 

 

저것이 달린 지점은 말할 것도 없이 양쪽 귓볼 밑이다. 

 

따라서 이로 볼 적에 저 금동관은 죽은 사람 얼굴 절반, 아마도 코끝까지 덮었음을 본다. 

 

이로 볼 적에 지금까지 출토한 신라 금관 혹은 금동관은 이른바 데드 마스크 dead mask 라는 콩글리시로 부르는 데스 Death Mask 임을 확실히 증명한다 하겠다. 

 

경상도 문화권에서 저런 시체 얼굴가리개는 시대를 조금 더 거슬러 기원전후 무렵 이른바 목관묘 단계로 가면 백우선白羽扇이라 해서 흰깃털 부채를 쓴다. 부채를 쓰다가 그런 유행이 지나면서는 다른 형식으로 대체된 듯하나, 그것을 확인할 길이 현재로서는 막막하며 직후 전개하는 적석목곽분 시대가 되면 제법 지체가 높은 계층에서는 금관 혹은 금동관을 썼음을 본다. 

 

 

현재 통용하는 신라금관. 하지만 이는 역사를 오도한 전시기법이다. 금관 끝장식은 안쪽으로 오므려야 한다. 

 

 

덧붙여 하나 더 지적할 점은 금동관 끝을 상투 묶듯이 묶거나 오므렸다는 사실이다. 

 

이 두 가지, 곧 금관 혹은 금동관은 모자처럼 쓴 것이 아니요 실제는 데스마스크이면서 끝부분은 오므렸다는 사실을 명확히 증명했다 하겠다. 

 

이번 발굴이 가장 의미가 있는 대목은 이것으로 나는 본다. 


데스마스크


***

이 고분이 어찌하여 조사가 되었는지 궁금증이 있었으니 그에 대해 이채경 경주시청 문화재과장은 이리 말한다.

봉분을 깎아내어 평탄화하여 그 위에 집이 들어서 있었던 것을 사적 지정구역 범위를 확대하여 추가지정한 다음 토지와 지장물을 보상 매입하여 철거하였다. 그 뒤에 그냥 내버려두기보다는 발굴하여 정비하고자 굳이 고집을 부려가며 발굴조사를 시켰는데 조사를 해 보니 원래의 120호분에 -1, -2라는 곁다리가 두 개 붙었다. 그런데 곁다리인 120-2호분이 이 정도인데 원래의 120호분은 어느정도일까 이후의 결과가 더욱 기대가 된다.

그에 대해 내가 다음과 같이 물었다.

문젠 왜 발굴하고 발굴하고 나서 우짤낀데?

이런 퉁명한 답이 돌아옴

 

건물 철거한 빈터를 그냥 내버려두면 그게 밭인지 평지인지 고분인지 아무도 알지 못함. 그리고 황남동 고분군 가운데 "대릉원" 서남쪽 놎전지구의 고분은 발굴사례가 없어서 성격이 불분명함. 그리고 내가 추가지정, 토지보상, 지장물철거 등을 하지 않고 그냥 두었으면 결국에는 개발을 위한 구제발굴 후에 건물이 들어섰을 것임. 발굴한 다음에는 걸맞는 정비사업을 해야지 뭐.

 

참고로 이 형님 올 연말 퇴직임

 

***

 

death mask는 아래 지적도 있듯이 서구에서 유명인에 대해 시행하는 얼굴 본뜨기 결과물이라, 이 경우 금동관이 데스 마스크라는 표현은 어울리지는 않는다고 본다. 

 

결국 facial mask라는 건데, 주검을 위한 마스크다. 페이셜 마스크라 하니 코로나19에 쓰고 다니는 마스크를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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