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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발굴 조사를 통해 드러난 칼리닌글라드의 전신 쾨니히스베르크의 역사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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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ian M.의 간행물 Topographia Prussiae et Pomerelliae // Topographia Electoratus Brandenburgici et Ducatus Pomeraniae에서 Königsberg를 묘사한 판화. 지형 게르마니아에. 1652년. 출처: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

 
러시아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의 역사적인 외곽 지역(Far Forstadt)에서 진행된 긴급 발굴 조사에서 400년이 넘는 세월을 아우르는 놀라운 유물들이 발견되어, 16세기부터 제2차 세계 대전까지 옛 프로이센 도시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의 일상생활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제공한다.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 삼비아 고고학 탐사대Sambian Archaeological Expedition가 2026년에 실시한 이번 발굴 조사는 레닌스키 프로스펙트Leninsky Prospekt, 크라스누크탸브르스카야 거리Krasnooktyabrskaya Street, 모레호드나야 거리Morekhodnaya Street로 둘러싸인 공원에서 계획된 재개발 공사에 앞서 진행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쾨니히스베르크 외곽 지역, 즉 중세 교외 지역 남쪽 부분을 구성한 곳을 조사했는데, 역사 기록에 따르면 이곳에는 14세기 초부터 사람들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한다.
 

드러난 목조 구조물 파편들. 출처: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문화 유적이 처음 발견된 것은 2006년이었지만, 반복적인 고고학적 조사 끝에 2025년에 공식적으로 고고학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역사 문헌에 따르면 이 지역은 원래 성 게오르크 병원St George’s Hospital과 관련 있었으며, 1327년에 가축 방목권을 받았다.

이후 수 세기에 걸쳐 이 지역은 정원, 작업장, 가축 우리, 시장 등이 어우러진 번성하는 교외 지역으로 발전했다.

17세기 중반에는 지역 서쪽은 고밀도 주택지로 개발되었고, 동쪽은 번화한 유원지로 변모했다.

발굴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는 1520년에 처음 기록된 운하인 추크 그라벤Zug Graben 일부다.

이 수로는 배수, 화재 방지, 운송, 방어와 같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었지만, 19세기 초에 매립되었다.

현재는 현대식 도로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복개했나?] 
 

1 – 예카테리나 2세 초상화가 있는 카운터 (1796년); 2 – 가구 세트의 일부 (17세기 후반~18세기 초); 3 – 담배 파이프 (17세기 중반); 4 – 델프트 장인 아리 드 밀데의 표식이 있는 찻주전자 받침 (17세기 후반~19세기 초); 5 – 잉크병 (18세기~19세기 초); 6 – 난로 타일 (17세기~18세기 전반); 7 – 난로 타일 (16세기); 8 – 약병 (18세기~19세기 초) 출처: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


고고학자들은 1810년에서 1815년 사이에 의도적으로 메운 것으로 보이는 운하 구간을 발굴했는데, 이는 연구자들이 쾨니히스베르크의 도시 경관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 지역 물에 젖은 토양은 고고학 유적에서 보기 드문 유기물을 보존하는 데 이상적인 조건을 제공했다.

발굴 조사 결과 목재 수도관, 울타리, 그리고 널빤지로 만든 도로가 남아 있었는데, 이는 이 지역에서 사용한 건축 기술과 기반 시설에 대한 귀중한 증거를 제공한다.

이러한 문화층에서는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의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여러 세대에 걸친 일상생활을 보여준다.
 

출처: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


발견된 유물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의 식기류와 도자기

장식용 난로 타일

17세기와 18세기 점토 담배 파이프
가죽 제품

양털 더미를 포함한 직물 생산 흔적

뼈 조각 폐기물, 미완성 도구 손잡이 및 묵주용 원석

연구자들은 뼈 가공 폐기물이 종교 용품과 생활용품을 제작하는 지역 장인들 존재를 시사한다고 본다.

몇몇 화폐 관련 유물도 주목을 받았다.

그중 하나는 예카테리나 여제Catherine the Great 초상을 새긴 뉘른베르크Nuremberg 유명한 화폐 제작자 요한 크리스티안 라이히Johann Christian Reich 서명이 있는 레헨페니히(Rechenpfennig) 기념 주화다.
 

1 – 아우구스타 빅토리아 여왕의 노이하우저(현 메치니코보) 별장 이미지가 새겨진 재떨이(1930년대 후반~1944년); 2 – 신문 조각(1930년대 후반~1944년); 3 – 파울 폰 힌덴부르크 초상이 새겨진 우표 5장(1936년); 4 – 채색된 찻주전자(1930년대 후반~1944년); 5 – 회중시계(20세기 초~1944년); 6 – 니콜라이 2세 초상이 새겨진 50코페크 은화(1897년). 출처: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

 
이 기념 주화는 아마도 1796년에서 1800년 사이에 주조했을 것으로 추정하며, 쾨니히스베르크와 유럽 전역을 연결한 상업적 관계를 보여준다.

또 다른 예상치 못한 발견은 니콜라이Tsar Nicholas 2세 초상을 새긴 1897년 발행 50코페크kopeck 은화다.

고고학자들은 이 동전이 쾨니히스베르크를 방문한 러시아 관광객이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러시아 제국을 여행하다 돌아온 지역 주민이 잃어버린 것인지 여전히 밝혀낼 수 없다고 말한다.

쾨니히스베르크 파괴의 흔적

발굴 작업자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도시가 파괴된 가슴 아픈 흔적들도 발견했다.

1944년 8월 영국 공군의 소이탄 폭격으로 파괴된 건물 지하실에서는 녹아내린 병, 휘어진 창유리, 녹아붙은 식기류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폭격으로 발생한 극심한 고온을 보여주는 증거다.

지하실에서는 수입 도자기, 신문 조각, 메틀라흐 바닥 타일, 지역 제조업체 이름을 새긴 벽돌, 회중시계, 생활용품, 나치 시대에 발행된 우표도 발견되었다.

전쟁 후 손상된 건물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 공원이 조성되었는데, 이로 인해 수세기 동안 묻혀 있던 고고학적 유물들이 현대적인 경관 속에 묻혀 보존되게 되었다.
 

1 – 다면체 호박 구슬 (18세기~19세기 초); 2 –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 1실링 동전 (1810년); 3 – 유약 접시 (18세기~19세기 초); 4 – 뼈 손잡이 (18세기~19세기 초); 5 – 주전자 꼭지 장식 (18세기~19세기 초); 6 – 담배 파이프 (18세기 후반~19세기 초); 7 – 양초 가위 (18세기~19세기 초); 8 – 노루 그림이 있는 유약 그릇 (18세기~19세기 초); 9 – 유약 장식 타일 (18세기~19세기 초). 출처: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


쾨니히스베르크의 과거를 들여다보는 창

발굴된 유물에 대한 실험실 분석이 현재 진행 중이지만, 고고학자들은 이번 발굴이 파르 포르슈타트Far Forstadt 지역에서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가장 풍부한 고고학적 기록 중 하나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번 발굴 결과는 쾨니히스베르크가 4세기 동안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한 귀중한 새로운 증거를 제공하며, 도시가 파괴되고 오늘날의 칼리닌그라드로 변모하기 이전의 공예, 무역, 축산업, 가정생활 및 도시 기반 시설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출처: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고고학 연구소Institute of Archeology RAS
 

 

저 칼리닌그라드는 희한하다.

지도에서 보다시피 주변에는 온통 폴란드니 리투아니아니 하는 데가 둘려쳐, 러시아로서는 본토에서 뚝 떨어진 섬과 같은 곳이지만, 이상하게도 러시아 영토로 그대로 남았다.

발트해에 접한 칼리닌그라드는 위선 표기가 제각각이라, 역사로 보면 폴란드나 리투아니아도 아닌 프로이센, 그러니깐 곧 독일 문화권이다. 

1256년에 건설된 이 도시는 튜튼기사단 국가, 프로이센 공국 수도였으며, 동프로이센 주도州都로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라 했다. 

2차 세계 대전 전까지는 독일 북동부 변경 중요 도시였지만 독일이 패전하는 바람에 소비에트 연방에 들어갔다가 구소련이 해체하면서 저 꼴이 났다.

지금의 이름은 1946년 소련 정치인 미하일 칼리닌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

현재 인구 대략 43만 5천 명.

언제가는 독일이 찾아가지 않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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