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벨기에 한 자연보호구역에서 중세 시대 영지 유적이 발굴 중이다. 이들의 작업에는 고고학 장비도, 발굴 허가도, 심지어 역사에 대한 관심조차 필요하지 않다. 그저 풀밭 아래에 터널을 파는 두더지가 있을 뿐이다.
겐트Ghent 대학 연구진은 역사적인 마을 담므Damme 인근 814개 두더지 흙더미에서 2,810점 고고학적 유물을 발굴해 13세기에서 14세기에 걸쳐 지어진 벽돌로 된 성문 건물 흔적을 발견했다.
이번 발견은 수 세기 전 역사 기록에서 사라진 중세 농촌 정착지 모습을 엿보게 한다.
고고방법 및 이론 저널(Journal of Archaeological Method and Theory)에 발표된 이 연구는 두더지의 자연스러운 굴착 활동이 고고학자들이 기존 발굴 작업 없이도 매장된 유적을 조사하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연구진은 발굴된 유물과 지구물리학적 측정, 역사 지도, 드론 이미지, 토양 조사를 결합해 사라진 영지 일부를 복원했다.
814개의 두더지 굴이 어떻게 고고학 조사의 산물이 되었는가
이 조사는 서플랑드르West Flanders의 역사적인 즈윈Zwin 지역 내 담므Damme 근처에서 이루어졌다.
중세 시대에 담므는 번영하는 무역 도시 브뤼헤Bruges의 중요한 외항 역할을 하며 유럽 전역의 해상 무역로와 연결되었다.
주변 지역에는 해자로 둘러싸인 농장이 많았는데, 이 농장들은 종종 인공적으로 높이 솟은 땅 위에 지었고 물로 채운 도랑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러한 농장들은 주거 및 농업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해자는 거주자의 사회적 지위를 반영하기도 했다.
수 세기 동안 농업 개발로 많은 농장이 사라졌다. 일부 유적은 현대식 경작을 피해 초원 아래에 묻혀 보존되었는데, 이로 인해 고고학적 유물이 보존되었지만 일반적인 지표 조사로는 발굴하기 어려웠다.
바로 이 지점에서 두더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더지는 굴을 파면서 소량의 흙을 지표면으로 밀어 올린다.
굴이 고고학적 유적층을 통과할 경우, 두더지 굴 안에서 도기 조각, 벽돌, 기타 재료들이 발견될 수 있다.
담므 유적에서 고고학자들은 GPS 장비를 사용하여 814개 두더지 굴 위치를 체계적으로 기록했다. 그런 다음 6mm 체로 흙을 걸러내고, 발견된 유물들을 수집하여 실험실에서 분석했다.
814개 두더지 굴 중 421개에서 고고학적 유물이 발견되었다. 이 유물들을 모두 합치면 건축 폐기물, 도기, 금속 유물, 자연석 조각 등 2,810점이 나왔으며, 무게는 2kg이 조금 넘는다.
0.5m 측정 장치를 사용해 두더지 굴에서 발견된 유물 분포를 옴 저항률 데이터ohm resistivity data와 비교했다.

풀밭 아래 숨은 중세 성문
유물은 조사 지역 전체에 고르게 분포하지는 않았다. 특히 약 10m x 8m 크기 직사각형 구조물 위에 고고학적 유물이 집중적으로 발견되었다.
앞서 실시한 지구물리학적 측정에서 이미 지하 이상대가 감지되었고, 토양 코어 분석을 통해 상당한 양의 벽돌 매장지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증거들을 종합해 연구진은 이 구조물이 중세 시대 대규모 농장과 관련된 벽돌 성문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주변 해자 반대편에서 발견된 추가적인 흔적들이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했다.
평행한 두 개 이상 지점은 아마도 교두보bridgehead 흔적일 것이며, 유적 쪽으로 뻗어 있는 선형 함몰부는 옛 진입로를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
발굴된 도기는 연대 측정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294점 도기 조각 중에서는 현지에서 생산된 회색 도기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적색 도기가 차지했으며, 장식 도기와 수입 석기는 소량 발견되었다.
도기는 대략 12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제작되었지만, 대부분은 13세기와 14세기에 만든 것으로 추정한다.
건축 자재는 건물 자체에 대한 추가적인 단서를 제공했다.
붉은색과 밝은 붉은색 벽돌, 모르타르, 지붕이나 바닥 기와, 슬레이트 조각, 철못 등은 벽돌과 목재를 사용한 견고한 구조물이었음을 시사한다.
건물의 정확한 모습은 발굴되지 않았기 때문에 불확실하다. 그러나 연구진은 벨기에 에클로에 있는 역사적인 영지인 후이스만회베Huysmanhoeve의 중세 성문에서 건축학적으로 유사한 점을 발견했다.
이번 발견은 또한 이 지역 역사에 예상치 못한 새로운 장을 열어준다.
플랑드르 지도 제작자 피터 푸르부스Pieter Pourbus가 1574년에 제작한 지도에는 담므 근처에 해자로 둘러싸인 두 곳이 표시되지만, 그 위에 건물이 서 있는 모습은 나타나 있지 않다.
새로운 증거에 따르면, 적어도 한 곳의 유적에는 한때 상당한 규모의 중세 시대 입구 구조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구조물은 지도가 그려지기 전에 폐기된 것으로 추정한다.
놀랍게도, 주변 해자와 토루는 450여 년 전 푸르뷔스가 기록한 풍경과 여전히 매우 유사하다.

두더지를 주목하는 이유
두더지 발굴 기법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벨기에, 영국 등지에서 이전에도 두더지 굴을 이용해 유적에서 고고학적 유물을 발굴한 바 있다.
담므 연구팀은 두더지 굴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와 여러 보완적인 측량 기법을 결합해 발굴 방법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연구진은 발굴된 유물 분포를 통해 사전 지질 조사 정보 없이도 매몰된 구조물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흥미롭게도 두더지는 건물 유적이 밀집된 지역을 피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그러한 지역 위에 있는 두더지 굴 수가 적을수록 고고학적 유물이 더 많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특징 덕분에 이 방법은 기존 발굴 방식이 제한되거나 바람직하지 않은 보호 초지에서 특히 유용하다.
또한 집약적인 농업과 개발로 위협받는 중세 농촌 유적을 비교적 저렴하게 조사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겐트 대학교 고고학자 얀 베를리프덴Jaan Verliefden은 두더지가 정원의 해충으로 여겨지는 이미지 뒤에 숨은 과학적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대학 발표 자료를 통해 "두더지는 우리 정원을 파헤치지만, 두더지 굴은 고고학자들에게 풀 아래 숨겨진 중세 시대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연구진은 중요한 차이점을 강조한다.
고고학자들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두더지 활동을 활용해야 하며, 의도적으로 유적에 두더지를 들여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두더지가 굴을 파는 행위는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매장된 유물을 손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담므 유적에서는 두더지가 이미 굴을 파놓은 상태였다.
고고학자들 역할은 흩어진 유물 조각들을 복원해 역사적 경관에서 사라진 중세 건축물 증거를 찾아낸 것이었다.
출처 : 겐트 대학교Ghent University
Verliefden, J., Trachet, J., Verhegge, J., De Smedt, P., & De Clercq, W. (2026). Small Heaps on Large Mounds: Where Mole Activity Meets Moated Sites: Re-evaluating and Refining Molehill Archaeology in the Shadow of the Zwin City Damme (Belgium). Journal of Archaeological Method and Theory. https://doi.org/10.1007/s10816-026-098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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