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복건성 복주에서 열리는 세계유산위원회 제44차 회의에서 세계유산 대표목록에 새로이 추가된 친구 중 하나다. 불란서 서쪽 해안 주축 도시인 보르도를 관통해 대서양으로 흘러드는 지롱드강 어귀 Gironde estuary에 들어선 르네상스 시대 이래 현재까지 사용하는 등대다. 육지에서 바다 쪽으로 약 7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섬에 있다. 조수간만 차이로 이 섬이 자맥질을 하는 모양이다.
높이 68m로 전통시대 등대로는 세계에서 10번째로 높다.
이 코르두앙 등대는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그 유산으로 꼽힌다. 설계는 파리 출신 건축가 Louis de Foix가 했으며, 르네상스시대 건축 걸작으로 꼽힌다. 1584년 건설이 시작되어 1611년에 완공됐다. 18세기에 상부 세 층이 추가되었다.
애초 이곳에는 작은 봉수대 같은 시설이 있었다. 저 등대가 들어서기 전에는 높이 15미터짜리 나무 불을 피우는 등대가 있었고 그것을 종교 집단이 관리했다. 이곳을 지나는 배들은 지날 때마다 염소인지 양인지 두 마리씩을 냈다. 등대 인근에는 작은 교회가 있었다.
그러다가 16세기 후반에 붕괴하면서 더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는 보르도 지역 포도주 무역에 심대한 위협이었다. 새로운 등대는 이런 위기감에서 생겨났다.
De Foix 애초 설계에서는 지름 41미터, 높이 2.4m인 토대를 세워서 파도를 막는 것이었다. 그에다가 1.9㎡ 구멍을 만들어 물과 다른 물품을 저장했다. 그 위에다가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4층짜리 등대를 만들었다. 그 등대 바닥은 지름 15미터 원형이었으며, 네 사람 등재지기가 기거하는 공간을 내부 벽면에 만들었다. 중앙에는 장식이 화려한 2.0㎡ 넓이에 6.1m 짜리 입구 홀이 있었다.
2층은 King's Apartment였으니, 거실과 대기실, 그리고 복수의 공간이 있었다. 3층은 채플이었으니 돔 모양 지붕은 그 화려한 모자이크 문양으로 이름 높았다. 그 위에 secondary lantern이 있었고 다시 그 위가 등대 전등이었다. 등대 전등은 해수면에서 49m 높이였고 5~6 마일 떨어진 데서도 보였다. 이때의 등대는 떡갈나무를 때서 운영했다.
1782년에는 포물선 모양 램프가 설치됐다. 하지만 설비가 안 좋아 불만이 많았으니 무엇보다 높이가 문제였다. 그리하여 1782년 이래 1789에 걸쳐 engineer Joseph Teulère이 주도하는 보강사업이 추진됐으니, 그는 무엇보다 30미터를 더 쌓자고 했으니, 다만 기단과 하부 2층은 루이 14세 스타일을 유지하고자 했다. 르네상스 시대 전통을 유지하게 된 것은 이에서 비롯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1790년, 등대가 60미터로 높아졌다. 이때 Teulère는 접시 모양 등대 램프를 고안했다. 이는 Argand 램프들로 구성됐으니, Dieppe 지역 시계 제조업자가 제안한 것이라 한다. 연료는 고래기름과 올리브기름, 그리고 유채기름을 섞어 썼다.
1823년에는 처음으로 Fresnel lens를 회전하는 시스템을 도입했으니, 이는 Augustin-Jean Fresnel이 발명한 것이다. 그에 도입된 세 개 동심원식 램프 심지는 펌프로 빨아올리는 유채기름을 사용했다.
1855년 수리를 거쳐 1862년에는 노트르담 성당과 함께 역사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에 앞서 1854년에는 Fresnel lens 가 현재의 렌즈로 바뀌었다.
등대를 가동하는 연료는 1907년 석유로 바뀌었다가 1948년에는 전기로 갈아탔으니 이때 6천 와트짜리 램프를 사용했다. 그러다가 1984년에 램프는 450 와트 xenon lamp로 교체됐지만 효과가 별로라 해서 팽개침을 당하고는 그 3년 뒤에는 할로겐 램프 halogen lamp가 설치됐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는 법. 2006년 완전 자동화했으니, 대신 고용 문제를 고려한 때문인지 등대지기가 여전히 근무했다.
국가가 고용한 마지막 전통시대 등재지기 두 사람은 2012년에 퇴직하고 SMIDDEST라는 단체 회원으로 교체되었다. 마지막까지 등재지기가 일한 곳으로 프랑스에서는 2019년 8월까지 이 시스템을 유지한 the Cap Fréhel 등대가 있다.
이런 흐름들을 보면 이 등대는 작은 기념물에 지나지 않지만, 등대를 위시하는 시설을 둘러싼 그 고스라한 수리역사 내지는 기술변천 지난 500년 역사를 온축했으며, 무엇보다 시대별 변화를 민감히 반영하는 한편 건축이라는 측면에서도 르네상스 시대 이래 현재에 이르는 여러 시대 층위를 함유함을 본다.
내가 유네스코 문서를 검토한 것은 아니나, 이런 측면들이 강조되어 이번에 세계유산 목록에 추가되었을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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