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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 THESIS

피라미드 건설자들은 노예가 아니었다? 4천 년 된 해골 DNA 분석 결과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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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인골에서는 노동 혹사 당한 흔적 완연! 

 

상단 이미지: 이집트 기자에 있는 쿠푸 대피라미드. 위키미디어 커먼즈.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공유 3.0 언포트 라이선스. 출처: kallerna/CC BY-SA 3.0


이집트에서 새롭게 발견된 무덤들이 기자의 대피라미드Great Pyramids of Giza 건설에 참여한 사람들의 유골을 공개하며, 이 고대 건축물들이 노예들이 지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깊이 2.7미터(9피트) 작은 구덩이에는 사막의 건조한 모래 덕분에 잘 보존된 10여 구 피라미드 건설자 유골과 함께 맥주 항아리, 심지어 사후 세계를 위한 빵까지 발견되었다. 

이 진흙 벽돌 무덤들은 기자의 대피라미드 근처, 1990년대에 처음 발견된 제4왕조(기원전 2575년경~2467년경) 시대 매장지를 넘어 현재 수도 카이로 외곽까지 뻗어 있었다.

사라지지 않는 노예 신화

역사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는 피라미드 건설자들이 노예였다고 묘사했지만, 대부분의 이집트학자는 이것이 신화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대중 소설과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은 피라미드 건설자들을 잔혹한 통치자의 학대받는 희생자로 묘사하며 이 신화를 퍼뜨렸다. 

이집트 수석 고고학자인 자히 하와스Zahi Hawass는 발굴 결과를 통해 노동자들이 노예가 아니라 임금을 받는 노동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이집트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이 양반은 행적에 논란이 많다.]

"그들은 당시 이집트 전역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노예 중에서 모집된 것이 아닙니다."

기자 고원Giza Plateau의 제4왕조 시대 복원도. 피라미드 건설자들의 잃어버린 도시(헤이트 엘 구라브Heit el-Ghurab)가 보인다. '피라미드의 잃어버린 도시' 프로젝트The Lost City of the Pyramids project 제공. (고대 이집트 연구소)


이집트학자들은 널리 퍼진 또 다른 신화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피라미드를 건설했다는 주장을 꼽는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고고학연구소 아미하이 마자르Amihai Mazar 교수는 이 신화가 이스라엘의 전 총리 메나헴 베긴Menachem Begin의 잘못된 주장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1977년 이집트를 방문했을 당시 베긴은 유대인이 피라미드를 건설했다고 주장했다고 전한다. 

마자르 교수는 이에 반박하며, "피라미드가 건설되던 시대에는 유대인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유대인은 피라미드를 건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고고학 vs. 대중문화

워싱턴 DC에 있는 성서 고고학 리뷰(Biblical Archaeology Review) 편집자인 도로시 레식Dorothy Resig은 이러한 생각이 아마도 구약성경 출애굽기에 나오는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 자손을 강제로 섬기게 하였더라”(출애굽기 1:13)라는 구절과, 파라오가 그들에게 성읍 건설을 시켰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자르는 이어서 “히브리인들이 무언가를 건설했다면, 그것은 출애굽기에 직접 언급된 람세스 성읍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가디언지에 따르면, 베를린 이집트 박물관 전 관장인 디터 빌둥Dieter Wildung은 피라미드 건설자들이 노예가 아니었다는 것은 “진지한 이집트학계에서는 상식”이라고 말했다. 

빌둥은 “이 피라미드를 노예들이 건설했다는 신화는 타블로이드 신문과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며, “세상은 피라미드가 억압과 강제 노동 없이, 파라오에 대한 충성심으로 건설되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피라미드 건설자들의 잃어버린 도시에 있는 행정 건물 복원 (헤이트 엘 구라브Heit el-Ghurab), 이집트 기자 고원Giza Plateau. 피라미드 유적 프로젝트 제공. (피라미드 유적 프로젝트/고대 이집트 연구소)


피라미드 옆의 묘지

자히 하와스는 피라미드 건설자들이 왕국의 북부와 남부 모두에서 저소득 가정 출신이었다고 설명한다. 

피라미드 건설 중에 사망한 사람들은 파라오의 신성한 피라미드 근처 무덤에 묻히는 큰 영예를 누렸다. 

이 무덤들의 근접성과 사후 세계를 준비한 듯한 매장 방식은 이러한 이론을 뒷받침한다. 

하와스는 이어서 말한다. 

"만약 그들이 노예였다면 결코 그렇게 존엄하게 묻히지 않았을 것입니다."

피라미드 건설자들 무덤에는 금이나 다른 귀중품이 없었기에 고대 내내 도굴꾼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될 수 있었다. 

시신은 미라로 만들지 않았지만, 고대 이집트의 믿음에 따라 머리는 서쪽, 발은 동쪽을 향한 태아 자세로 발견되었다. 

무덤 주변에는 사후 세계로의 여정을 위한 물품으로 가득 차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항아리들이 놓여 있었다.

이집트 기자 고원, 피라미드 건설자들의 잃어버린 도시(헤이트 엘 구라브)의 III.3 및 III.4 발굴 현장. '피라미드의 잃어버린 도시' 프로젝트 자료에서 발췌. (피라미드의 잃어버린 도시 프로젝트/고대 이집트 연구소)


수천 노동자를 위한 식량 공급

“고대 세계의 왕들을 위해 이 놀라운 기념물들을 건설한 사람들은 고기를 정기적으로 섭취했고 주로 3개월 단위로 교대 근무를 했습니다. 
증거에 따르면 대피라미드 건설에 참여한 약 1만 명 노동자는 농장에서 매일 보내온 소 21마리와 양 23마리를 먹었다고 합니다.” 

1만 노동자가 30년 동안 단 하나의 피라미드를 건설했는데, 이는 전체 노동력 10분의 1에 불과하다. 

하와스에 따르면 헤로도토스는 피라미드 건설이 완료된 후 2천 년이 지난 기원전 450년경에 이집트를 방문했기 때문에 그의 기록은 사실에 근거한 보고서라기보다는 현지인들과의 접촉을 통해 전해 들은 전설이나 이야기에 기반했을 가능성이 있다.

유골이 보여주는 피라미드 건설자들의 일상생활

아델 오카샤 Adel Okasha 는 건설자들의 삶이 고달팠음을 지적한다. 

"이들은 노예는 아니었지만, 고된 노동으로 점철된 매우 힘든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또한 "유골에서 관절염의 뚜렷한 흔적이 발견되었고, 허리뼈는 그들이 고난에 찬 삶을 살았음을 시사한다. 그들의 뼈는 그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했는지를 보여준다"고 말한다. 

오카샤는 유골에서 치유된 골절 흔적과 훌륭한 의료 치료의 증거도 발견되었다고 언급한다. 

노동자들은 노동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의료 혜택을 받은 것이다.

빌둥은 건설자들이 자유롭게 떠날 수 있었지만, 일을 계속하기로 선택했다고 믿는다. 

"이번 발견은 피라미드 건설자들이 모두 자유인, 평범한 시민이었다는 생각을 뒷받침합니다. 하지만 과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짧은 생을 살았고, 골격 단층 촬영 연구 결과는 그들이 건강이 좋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이는 그들의 고된 노동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집트 제4왕조 시대에 피라미드 건설자들의 잃어버린 도시(헤이트 엘 구라브)에 있던 아치형 회랑 건물의 복원도. 이곳에서 노동자들이 아치형 천장 아래에서 생활하며 일상생활을 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피라미드 잃어버린 도시 프로젝트/고대 이집트 연구소)


DNA 분석: 격리의 신화

과거에는 고왕국 시대 유전 물질에서 DNA를 추출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사막의 뜨거운 열기가 유전 물질을 빠르게 분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Francis Crick Institute와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Liverpool John Moores University 과학자들이 고대 이집트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게놈의 염기서열을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피라미드 건설 시대인 4,500년 전에 산 숙련된 도공의 유해를 이용해, 연구진은 고왕국 시대 개인의 최초 전체 게놈 염기서열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리버풀 존 무어스 대학교 방문 연구원이자 이번 연구 제1 저자인 아델린 모레즈 제이콥스Adeline Morez Jacobs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개인의 DNA, 뼈, 치아에서 얻은 모든 단서를 종합하여 포괄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고대 이집트에서 발굴될 DNA 샘플을 통해 서아시아에서 이집트로의 이동이 정확히 언제 시작되었는지 더 자세히 밝혀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구진에 따르면 그의 조상 중 80%는 북아프리카에 산 고대인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20%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 특히 오늘날 이라크 지역에 산 고대인으로 추적할 수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고대 세계 전역에 걸쳐 광범위한 인류 이동과 관계망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유전 데이터는 고고학적 증거 또한 뒷받침한다. 

피라미드 건설 시대에는 메소포타미아의 물레와 같은 다른 지역의 도구와 공예품이 이집트에서도 사용되었는데, 이는 이주민들이 자신들의 공예품을 공유하고 물건을 판매했기 때문이다.

생물고고학자들은 골격 분석, 화학적 분해, 유전자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피라미드 시대 사람들의 개별적인 유전적 특징을 파악했다.

애버딘 대학교 고대 생체분자학 강사이자 LJMU 방문 연구원이며 이번 연구 공동 선임 저자인 리누스 기르드랜드 플링크Linus Girdland Flink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도공은 놀라운 여정을 거쳤습니다. 그는 고대 이집트의 중요한 변화 시기에 살다가 죽었고, 그의 유골은 1902년에 발굴되어 리버풀 세계 박물관World Museum Liverpool에 기증되었습니다.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폭격 속에서도 살아남았는데, 당시 박물관 소장품 대부분 유골은 파괴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인물의 이야기를 일부 밝혀낼 수 있게 되었는데, 그의 조상 중 일부가 비옥한 초승달 지대 출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연구팀은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의 유골에서 추출한 DNA를 이용해 파라오를 위한 기념물을 건설한 사람들의 유전적 프로필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피라미드 건설에는 강인한 허리와 불굴의 정신이 필요했다

피라미드 건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노동자들 유골을 통해 그들의 근육이 혹사당하고 뼈가 부러진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피라미드가 사막 모래 위로 솟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그들은 큰 사명감과 심지어는 쾌감까지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집트 데일리 뉴스에 기고한 모하메드 사미르Mohamed Samir는 피라미드 건설자에 대한 이러한 발견이 단순한 학문적 논쟁을 해결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이는 문화적 소유권, 식민주의의 유산, 그리고 아프리카 정체성의 근본적인 정의와 관련이 있습니다.

증거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단순하고 종종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기존의 서술을 넘어서는 데 매우 중요합니다."

 
***
 
이와 같은 주장은 조심해야 한다.

고대 이집트가 잔혹한 독재국가였다면 그 후손이 반기겠는가?

실제 분석 결과도 이율배반이다.

노예가 아니었다?

아니었으면 뭐하나? 노동에 혹사당했음은 분명한데?

노임을 받는 노무자 노동자라 해서 그들이 노예 같은 삶에 혹사당하지 않았다고 볼 수도 없다. 

노예나 다름 없는 강제노동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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