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샌디 오스터, Phys.org

고고학자들이 2,600년 된 고대 중국 군주 무덤을 열었을 때, 그들은 그의 웅장한 청동 종들이 흩어져 있고 나무 장식도 부서져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가장 불가사의한 점은 이것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무덤 주인 가족이 더 이상 종의 힘이 필요하지 않게 되자 "비활성화deactivate"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656년 또는 625년 무렵, 증曾나라 군주 추Qiu는 적대국인 초楚나라에 맞서 조상의 힘을 불러내기 위해 한 쌍의 종을 제작하도록 의뢰했다.
하지만 추가 죽기도 전에 증 가문과 초 가문은 화해했고, 보호를 기원하는 종소리는 더 이상 의미를 잃었다.
그의 사후, 유족들은 사후 세계에서 그의 역할을 재정립하려는 의도로 종을 해체했다.
"고고학자들이 유물을 도구로만 취급한다면, 과거에 현대적이고 합리적이며 세속적인 인간의 이미지를 투영할 위험이 있다"고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 고고학 연구소 박사 과정생인 칭롱 체Chinglong Tse는 말한다.
그는 증 가문에게 종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영혼, 조상, 그리고 권력으로 가득 찬 세계의 능동적인 일부였다고 주장한다.
그의 연구는 케임브리지 고고학 저널Cambridge Archaeological Journal에 게재되었다.

춘추시대의 종소리
추는 중국 역사상 격동의 시기였던 춘추시대에 살았다.
당시 주 왕조 여러 제후국은 권력 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추의 나라 증曾은 장강과 주 왕실 중심부를 잇는 계곡에 자리 잡고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증나라는 하늘의 명령을 받아 "남중국을 수호하고 이끌어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증나라는 주나라의 강력한 세력이었던 초楚나라의 도전을 받았다.
증나라는 자신의 영토를 지키기 위해 용 문양과 반짝이는 석영으로 장식한 화려한 청동 종을 제작했다.
이 종에는 조상들의 영웅적인 행적을 기리고 증나라의 영토를 수호해 달라는 글귀가 새겨 있었다.
그러나 초나라 왕이 자기 여동생을 증나라 군주에게 시집보내면서, 조상의 힘을 모으던 종소리는 과거 국가 간 경쟁을 보여주는 어색한 유물이 되어버렸다.

새bird 소리를 울리던 종소리를 잠재우다
주나라 시대에 청동 종은 단순한 장식품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종은 군주와 그 가문에 깊이 연결되어 있었고, 그 울림은 마치 새소리처럼 하늘에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종의 힘은 제대로 배열되어 종걸이에 걸려 있을 때만 발휘되었다.
그래서 추가 과거의 적과 동맹이 되어 죽자 그의 유족은 종을 해체해 흩어지게 함으로써 사후세계를 부르는 소리를 막으려 했다.
도굴 과정에서 종이 흩어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무덤이 온전하게 보존된 것은 종을 흩어지게 한 행위가 의도적이었음을 시사한다.
체에 따르면, 이러한 증거는 "매장 당시 의도적으로 종을 해체했음을 보여준다"고 한다.
주나라 시대에는 죽음으로 조상과의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의례를 통해 유지되어야 했다.
따라서 추는 기존 종을 해체한 후, 더 작고 단순한 새로운 청동 종을 제작하도록 했다.
이 종들은 남동쪽을 향해 가지런히 쌓여 있었고, 새겨진 명문은 오직 사후 세계에 관한 것이었다.
체는 고고학자들이 유물을 단순한 도구로만 취급하는 경향이 너무 심해, 과거 사람들이 주변 사물을 얼마나 다르게 이해했는지 간과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고학자들이 유물과 고대 문헌, 분석 자료를 결합하여 "고대의 사물과 사람들이 말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유물을 기록하고 "기능적 또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체는 말했다.
이러한 생각을 탐구하기 위해 체는 청동 종이 제작된 증나라 도시 중 한 곳을 발굴할 계획이다.
"증나라에서 청동 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고 그는 말하며, 제작 방식을 이해하면 당시 사람들이 청동 종에 연결한 세계관과 신념을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Publication details
Chinglong Tse, 'The Bells Are Harmonious and Resonant': Numinous Ancestors, Resonant Bells and the Personhood of Lord Qiu of Zeng in Tomb M190 at Zaoshulin, Hubei, Cambridge Archaeological Journal (2026). DOI: 10.1017/s0959774326100651
Journal information: Cambridge Archaeological Journal
***
연구자가 말하는 종의 저런 중요성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보기가 실은 성덕대왕신종이다.
이 신종을 불교라는 관점에서 이해하는 경향이 압도하는데, 그것이 종묘 제기였다는 사실을 하시라도 잊어서는 안 된다.
덧붙여 저 편종을 저리 무덤 안에 배치하는 방식은 이른바 훼기毁器 의식 일종이다. 삶과 죽음의 길은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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