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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뭣도 모르고 좋다 해서 무조건 기와에다 동전을 박아넣은 한성백제인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9.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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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전문도기錢紋陶器, 곧 동전 무늬를 새긴 질그릇 이야기를 하는 김에, 개중 하나로 빠지지 아니하고 거론하는 유물이 서울 석촌동 고분군 출토 저 와당이라

저 유물이 특이한 점은 말할 것도 없이 저 모티브는 동시대 중국 대륙, 특히 위진남북조 시대, 개중에서도 남조南朝 시대 영향이라는 사실이며,

이 점에서 또 하나 이채로운 점은 한반도는 저 시대는 물론이고 조선 말기까지 화폐, 특히 동전이라고는 제대로 상품 교환재로서 제대로 유통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돈이 좋은지는 어찌 알았는지, 동시대 중국에서 유행하는 흐름 끝자락 하나가 흘러들어, 저 모티브를 그대로 따다가 지붕 마감재로써 저 동전 무늬를 떡하니 박아놨다는 사실이다. 

더 특이한 점은 저 와당이 꼴랑 현재까지 저것 하나만 알려졌다는 사실이다. 

저 와당은 서울대박물관이 한창 석촌동을 씹어먹던 1970년대 혹은 80년대 발굴품이겠거니와,

이건 내가 자료를 좀 찾아봐야겠지만, 저 무렵 발굴현장 책임자는 김원룡[본인은 김원용으로 썼다]으로 등재되지만, 솔까 삼불은 발굴을 할 줄 모르는 얼치기 고고학도라, 실제 현장 지휘는 대학원생들이 했으니,

그 계보를 추적하면 초창기 오야붕 중 한 명이 배기동 선생이었으니, 훗날 구석기 고고학도연 하면서 국립중앙박물관장까지 기어이 해 자시는(기어이라 하는 이유는 본인이 그렇게 하고 싶어했다가 마침내 했기 때문이다. 것도 고등학교 동기동창 문재인이가 대통령까지 먹어버리는 바람에 응겹결에...) 석사 과정까지만 해도 역사고고학, 특히 백제 고고학을 하리라 하고선 한창 석촌동 발굴에 매진했고,

그 바톤을 이어 내 기억에 남는 인물로는 훗날 전남대 교수가 되는 임영진, 또 훗날 충남대 교수가 되는 박순발에 이르기까지 차례로 넘어가게 된다. (윤덕향 선생도 연배로 보아 참여했을 법해서 일전에 직접 탐문했더니, 군 입대 중이어서 휴가 때 잠깐 현장에 가 있었다고 한다!) 

기타 저들 말고도 소위 기라성을 방불하며 한국고고학을 말아먹게 되는 이들로 저 세대는 한 번쯤은 석촌동에 갔으니 

저 돈 무늬 와당은 누가 발굴할 적에 건져냈는지 모르겠다. 이건 보고서를 찾아 봐야 한다. 

와당이라면  아래 전통건축물 지붕 부재를 보건대 
 

 
암막새 수막새라 표시한 그것이라, 두 두 가지를 통상 와당이라 퉁치지지만, 저 동전 무늬 와당은 수막새다. 

보다시피 저런 와당은 추녀끝 장식품이라, 건물채 하나가 폭삭 내려앉으면 아무리 파편이라 해도 여러 점이 한꺼번에 나와야 정상이어니와, 저것 하나만 꼴랑 나온 점도 영 수상하다. 

저 동전은 중국에서는 시대를 달리하며 각기 다른 종류가 선보였으나, 개중에서 시대를 막론하고 인기가 있었던 것이 오수전五銖錢이었으니, 저것도 볼짝없이 오수전 종류일 것이다. 

보다시피 백제는 이미 한성도읍기에 좀 인기 있고, 우리도 흉내내 볼 만한 것은 잽싸게 수입해 자체 디자인화했다. 

이미 동전 문양까지 그러했거늘, 더구나 그걸 와당에다 박았거늘, 다른 기물에 박는다 해서 뭐가 더 이상하리오?

전문도기? 수입품? 내 보기엔 개소리다.

하긴 뭐 저 석촌동 발굴 무렵만 해도 백제는 아예 한성기에는 기와를 쓰지 않았다는 개소리가 넘쳐나던 시절이라, 이것이 풍납토성이 발굴되면서 와장창 풍비박산 났다. 

기와가 산더미처럼 쏟아졌고, 무엇보다 와당 종류도 실로 다종다양했다. 
 

한성기 백제 와당. 주로 풍납토성 출토품이다.

 
풍납토성?

그리 쉽사리 할 이야기 아니다.

그건 한국역사를 통째라 바꾸어 버린 혁명이었다. 

아 참 말 나온 김에 이 이야기도 해둔다.

저 앞에 지금은 기라성을 방불한다는 지금의 60~70대 고고학도 몇 명을 실명 거론했거니와, 각 고고학 분야에서 대가처럼 군림하나 다 사기케다! 

한성백제에 기와가 있었다는 사실도 모르고 공부하고 판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헛공부를 했다는 뜻이다! 

음....이 고백에 발끈할지도 모르겠는데, 더 늙기 전에 다들 나는 헛것을 공부했다고 지금쯤 고백하고 지나가면 어떨까 한다. 
 

와당과 이형토기異形土器 사이, 배기동 굴욕사건

 

와당과 이형토기異形土器 사이, 배기동 굴욕사건

70년대 중반, 아마도 76년 무렵으로 기억하거니와 당시 서울대박물관에서 석촌동 발굴조사를 했다. 3호분인가 4호분을 배기동 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님이 팠다. 그 무덤앞 아마도 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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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단지 대접 받다 똥개보다 못한 신세가 된 전문도기錢紋陶器
https://historylibrary.net/entry/jeonmun

 

신주단지 대접 받다 똥개보다 못한 신세가 된 전문도기錢紋陶器

공주 공산성 옥녀봉 구간을 팠더니만 한성백제 시대로 추산할 만한 흔적들이 나왔다는 발표가 오늘 공주시발로 있었거니와, 그에서 파제껴 수습한 유물 중에 흑유 전문도기 옹편黑釉錢文陶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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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공산성 파보니 풍납토성과 흡사한 토성 벽, 동전 무늬 새김 도기 출토
https://historylibrary.net/entry/gongsan

 

공주 공산성 파보니 풍납토성과 흡사한 토성 벽, 동전 무늬 새김 도기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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