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 김충배 선생 지적이 있듯이 생선을 장기간 그리고 원거리로 유통하기 위한 절대의 조건은 냉동시설이 없던 전근대엔 건어화 밖에 없고
그것이 아니라면 자연 냉동이 가능한 겨울철이 아니라면 결국 염장질밖에 없으나
소금에 절인 형태의 유통도 문제는 없지 않아 천년만년 물고기 부패를 막을 수는 없다.
결국 남는 건 수분을 완전히 제거해버리는 건어화밖에 없지마는 이 건어물도 문제는 없지 않아 자칫하면 곰팡이 나서 다 썩어버린다.
이에 훈제라 해서 아예 거슬려서 연기를 씌우는 방법이 있으나 이 훈제 유통은 내가 보고들은 데가 짧아서인지 모르나 아예 기록에서 보이지 않는다.
고등어나 갈치는 소백산맥 기슭 산촌 출신인 내가 어린 시절만 해도 그나마 식단에 자주 오른 단백질 공급원이긴 했다만 근간에서 건어화가 불가능해 거개가 소금 반 생선 반이라 소금을 씹는지 생선을 씹는지 알 수 없을 정도였으니
뭐 이걸 요새는 간고등어라 해서 관광상품화하더라만
그 썩어가는 냄새는 고약하기 짝이 없어 오죽하면 그 다부동전투 참상을 목도한 지훈 조동탁이 전장에서 썩어가는 군인들 시신이 간고등어 냄새가 난다 했겠는가?
그러고 보면 소금이 귀하디 귀한 시절 대체 그걸 함부로 구할 수도 없던 백성들이나 노비들은 대체 무엇으로 염분을 보충했을까?
요새야 소금을 먹지 마라 하더라만 과용을 말하는 것이지 어찌 사람이나 동물이 소금 없이 살아간단 말인가?
죽염을 채취했다지만 이 죽염도 요새 기법이 아닌가 하며 대체 죽염에 대한 조선시대 증언은 만날 수조차 없다.
소금은 대체 어딨는겨?
다 그 시절에 해운대 해수욕장 가서 바닷물 퍼왔단 말인가?
아 정작 본론을 까먹었다.
결국 장거리 유통 생선의 절대관건은 건어화거니와 춘 관장 말대로 이를 위해선 무조건 대가리 따고 내장을 발라야 했으니 결국 이는 내장 골수 다 파낸 고대 이집트 미라화 기법과 똑같다.
그들 역시 미라화 비결은 생득으로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조선 시대 이전 생선 조달 문제와 소금의 문제!
https://historylibrary.net/m/entry/salt
조선 시대 이전 생선 조달 문제와 소금의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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