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이 애초 영어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내 조어라고 해두고자 한다.
굳이 풀어쓰자면 순진무구주의라 할지니,
우리 역사에서는 추상명사 집합명사로서 이런 경향이 농후하게 관찰되거니와, 얼마전까지만 해도 전가의 보물이었던 민중民衆이 대표적이라, 그 어느 경우에건 일군의 역사학도에게 민중은 항용 저항 정신의 표상이요, 그 자체로는 그 어떤 악에도 물들지 않은 개념이었다.
한국 근현대사를 설명하는 도구로 불패의 신화를 자랑한
반제 반봉건....
반제국주의 반봉건주의 선봉으로 이른바 민중이라는 주체를 내세우며 이들은 항용 밟으면 꿈틀하는 존재로 설정했으니, 이른바 갑오농민혁명에서 비롯하여 광주민주화운동, 그리고 87년 민주화운동에 이르기까지 권력과 지배에 맞서는 도도한 주체로써 민중이 발명되었던 것이다.
한데 민중은 추상이요 집합명사라, 한편에서는 그것을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을 만질 수 있으며 직접 말을 나눌 수 있는 시각화를 요구하게 되니, 이런 요구에 그들이 항용 그 대표주자로 내세운 이가 농민이었다.
민중사관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민중 혹은 농민은 무결점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순수할 수 없다.
이런 순수한 이들이 밟으니 꿈틀하고, 그런 밟힘이 지속되다가 마침내 폭발하는 것이 혁명이라는 도식이었다.
이 무결점주의가 실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 침투했으니, 이른바 로맨티시즘 romantism 이 그것이다.
이들은 항용 말하기를
농촌으로 가라고 외치는가 하면
시골 인심을 들먹인다.
몇 번 말했지만, 다시 반복한다.
너희가 말하는 민중, 너희가 말하는 농민은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는 허상이요 추상에 지나지 않는다.
농민 민중은 단 한 번도 순수했던 적이 없다.
그렇다고 내가 농민 민중이 사악하다고 말하는가?
그들도 사람이라 개중엔 개차반도 있고, 개떡 같은 놈도 있고, 이재만 밝히는 놈이 있는가 하면, 너희가 말하는 순진무구한 사람도 일부 있을 수 있다.
민중 혹은 농민이라 해서 유별나게 보아서는 안 된다.
민중 농민 순결주의 무결점주의는 그들을 바보 등신 천치로 간주하는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런 역사관을 이노센티즘이라 부르고자 한다.
(2015.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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