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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S & MISCELLANIES

태생 자체가 기형인 귀신집 종묘, 정치투쟁의 장이 되다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5.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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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뒷담 공중에서 남쪽 남산을 조망한 모습. 출처 조선일보

 
주례周禮가 구상한 도성은 지상의 절대 패자로 살아 있는 권력자인 왕이 사는 왕궁王宮을 기준으로 그 양쪽으로 양대 귀신집을 두는 시스템이니 

그 위치를 보면 왕궁 왼편, 곧 동쪽에 조상신들이 사는 귀신집인 종묘宗廟를 두고, 오른편(서쪽)에 땅귀신 곡물신인 사社와 직稷을 한묶음한 귀신이 사는 사직단社稷壇을 둔다 했으니 예서 문제는 거리였다. 

왕궁과 저들 귀신 상여집을 얼마 만한 거리를 둬야 하는지는 규정이 없었다. 그도그럴 것이 형편이 달랐기 때문이다. 

다만 하나 분명한 점은 상당한 이격을 해야 한다는 심리적 마지노선만 있었다.

이때 이격이란 서로 침범하지 않는다는 묵언의 합의였다. 

이를 구상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땅이 평지여야 했다.

하지만 조선의 국토는 개판이라 무엇보다 산이 많았다. 그래서 안 맞았다. 

조선왕조 개창과 더불어 정궁이자 법궁法宮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사직단은 그런 대로 언덕이 있어 거리는 가깝기도 해도 그런 대로 차단 효과는 있었지만, 그 왼쪽 종묘 자리가 문제였다. 

종묘는 지금의 지리를 볼 적에는 현대건설 자리 혹은 창덕궁 창경궁 자리 정도가 되는 쪽이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종묘가 들어갈 자리에 또 다른 궁궐이 꿰찼다는 데 심각성이 있었다. 

생뚱맞게도 종묘가 창덕궁 창경궁 앞마당을 차지한 이유가 이것이다. 

이리 되니 자리가 문제였다. 무엇보다 경복궁 중심으로 동쪽이기는 했지만 대강 동쪽, 더욱 정확히는 동남쪽이었고, 이것이 특히 문제였는데, 산 사람 공간과 죽은 사람 공간이 분리되어야했지만, 적당한 자리를 물색하지 못한 까닭에 궁궐 앞마당을 차지해 버리는 기형이 되고 말았다. 

무엇보다 종묘는 창덕궁 창경궁과 너무나 가까웠으며 다른 데는 민가 천지였다. 

실상 조선시대로 돌아가면 창덕궁 창경궁 종묘는 세 세트는 하나의 궁궐 구역을 형성했다. 

이 문제로 조선왕조는 두고두고 골머리를 앓게 된다. 귀신 집이 산 사람 사는 집과 너무나 가까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때문에 왕이나 신하들이 종묘에 거둥하기는 편했다.

가까워서 출퇴근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았고 각종 종묘 제례에는 터벅터벅 자기 집에서 걸어나와 가도 되는 거리였다.

물론 이것도 움직이기 싫다고 울러메는 가마 타고서 출동하기는 했다만 말이다. 

종묘 앞에는 지금도 대소인원 개 하마, 大小人員皆下馬라 해서 말 탄 자는 니리라!는 경고문 비석이 서 있기는 하지만, 솔까 종묘는 말 타고 출근할 거리가 아니었다. 

아무튼 종묘는 태생 자체가 기형이다.

있어야 할 곳을 너무 많이 벗어난 데다 무엇보다 산 사람이 사는 공간과 너무 가까워 귀신이 편히 쉴 시간이 없었다. 

종묘는 저 자리에 자연히 주어진 그 무엇이 아니다. 고육한 택지擇地의 소산이라, 어정쩡하니 선택되어 오늘에 이른다. 

종묘는 조선왕조 망국과 더불어 그 절대 존재기반을 상실했다.

조선왕실이 망국한 마당에 그것을 받침할 왕조가 멸망해 버린 것이다. 

존재 가치를 상실한 그런 종묘에다가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것이 바로 문화재라는 새로운 가치였다. 

문화재는 이땅에 느닷없이 그야말로 하늘에서 어느날 날벼락처럼 떨어졌다. 

근대 이전 이 땅에는 문화재라는 가치도 없었고, 그래서 그것을 문화재니깐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 관념 신념 강박 자체가 없었다. 

그런 고물 창고가 어느날 문화재라는 새로운 옷을 갈아입고서는 대한민국 사적이 되고, 그것도 좀 성에 안찬다 해서 어느날 세계유산에까지 목록에 올랐다. 

그 본래하는 존재기반을 잃어버리고 전연 새로운 가치로 갈아탄 종묘를 두고 난리다. 

이르기를 그 전면 세운상가 자리에다가 서울시가 140미터짜리 고층건물을 즐비하게 세운다 하니,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그것은 역사에 대한 능욕이라며 그 개발을 반대하는 논박이 솟음해 두 움직임이 불꽃을 튀기는 중이다. 

마침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 사태는 마침내 정치투쟁으로 변질해, 중앙정부 권력이 교체된 마당에 서울시를 장악한 야당 시장을 용납할 수 없다며 기필코 이참에 그 시장 자리 목을 따고 말리라는 정치투쟁이 이른바 문화재 고유가치 수호라는 명분과 합세해 그 개발을 밀어부치고자 하는 힘을 무력화하려는 투쟁의 장으로 변질하고 있다. 

이래서 문화재가 재미 있다? 

글쎄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만 몹시도 씁쓸하기만 하다. 

왜? 정치로 푼 해결 내 경험을 보건대 훗날 꼭 정치로 망하더라. 

정치지형은 수시로 바뀐다. 그때마다 우리는 그 줄타기를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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