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수평權守平은 고려사 권 제102 열전 권 제15 제신諸臣 중 한 명으로 이름을 들이민다.
열전에 보인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족적이 심상치는 않음을 증명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제신 열전에 오를 만큼 대단한가는 좀 의심스런 대목이 없지는 않거니와,
나는 현재 우리가 보는 고려사가 편찬되던 조선 전기 시각, 곧 당시 안동 권문이라는 특정 문중 시각이 짙게 반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도 해 본다.
이 권수평이 중요한 이유는 훗날 현달하게 되는 안동권씨 문중에서 말하는 선대 계보 인물 중 시조 권행權幸 이후 처음으로 확실히 족적을 남기게 되는 후손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조선 전기에 나온 안동권씨 성화보를 보면 저 권행 이후 수평에 이르기까지 물경 7대 이름이 단선 계보로 보이며, 그네들이 대체로 호장戶長이라 해서 아마도 안동 지역에 세거하는 지방 토호 세력 정도로 그리려 한 듯한데,
권행 이후 권수평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계보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고려사나 고려사절요, 혹은 기타 고려시대 묘지명에서도 확인되지 않는다.
그렇다 해서 단순히 훗날 가공해서 붙었다? 이리 치부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고, 지역 향토사회에서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중앙 정계에서는 존재가 제로인 듣보잡 가문이었음은 분명하다.
솔까 권수평을 고려사 열전에서는 안동 출신이라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가 권행 직계 후손인가는 별개 문제다. 이건 알 수도 없다.
권수평이 진짜로 삼한벽상공신 권행의 후손이라면, 이런 중대한 기술이 고려사 열전에서 탈락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권수평은 언제적 인물이며, 그 행적은 어떠한가?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고려사 열전이 절대의 준거 역할을 하거니와, 다시금 말하지만 이 열전이 의문스럽기 짝이 없는 이유는 느닷없이 들어간 느낌이 있기 때문이다.
본래 열전에 들어가는 인물은 해당 사서 본기本紀, 혹은 세가世家에 행적 기술이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내 조사가 철저하지 않은 이유도 있겠으나, 고려사의 경우 세가에 보이는 권수평 관련 기술은 권 제23 고종高宗 37년(1250) 7월에 보이는 다음 구절이 꼴랑 전부다.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권수평權守平이 죽다.
이것 말고는 도대체 권수평이 누구이며, 행적이 어땠는지 적어도 세가에서는 알 길이 없다.
그래서 나는 권수평 고려사 열전 입전立傳이 모종하는 고려사 편찬 찬진 당시의 권력 구도 입김에서 말미암는다 본다.
[마도 목간, 최충헌을 폭로하다] (1) 안동권씨 추밀공파 파조 수평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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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도 목간, 최충헌을 폭로하다] (1) 안동권씨 추밀공파 파조 수평 선생
고려 무신 정권기는 여러 모로 한국사 획기이거어니와, 무엇보다 신분제가 요동을 쳤으니 종래 같으면 신분 상승은 꿈도 꾸지 못할 사람들이 지배 최상층으로 오르는 시대였다.이 시대 이런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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