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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고인돌 이야기] (spinoff) 순식간에 날아가 버리는 흙더미, 엎어버려야 하는 부엽공법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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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부르는 고인돌은 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인돌이 아니라 본래는 석실분 주체 시설 흔적이라는 말을 나는 거듭거듭했거니와 

그런 돌로 쌓고 덮은 무덤방이 껍데기, 그러니깐 그것을 피복한 흙더미가 날아가버리고 난 모습이 고인돌이라 

그 피복 흙더미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라,

실은 저 모습은 우리네 집안 할머니 할아버지 무덤이다.

것도 관리를 조금만 소홀히 하면 몇 년이 가지 못해 평지가 되어 버리고 만다. 

저렇게 붕괴한 무덤, 다시 쌓아 올리지 않으면 결국 평지가 되지 뭐가 되겠는가? 

저렇게 해서 사라진 무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다 사라졌다.  
 
 

 
이건 놀랍게도 조선 왕릉 중 하나다.

조선 19대 숙종 후궁 중 한 명인 영빈 김씨(1669~1735)가 묻힌 남양주 소재 무덤이다. 

저렇게 홀라당 붕괴한 무덤 흙이 나는 조선시대 그것으로 보지 않는다. 

후대에 손 본 그 흙이 무너졌을 것이다. 

암튼 그렇게 잘 쌓았을 조선 왕릉도 손 보지 않으면 저런 식으로 해서 영원히 사라진다. 

홀라당 사라진다. 

저리 쉽게 사라진다. 
 

봉황대 고분

 
그런 점에서 나는 항용 왜 신라무덤, 주로 적석목곽분이 되겠지만 그것들을 저리 살아남았는지가 몹시도 궁금하기 짝이 없다. 

물론 그런 적석목곽분도 대부분 사라지고 남은 것이 지금 보는 그것들이지만, 도대체 어떻게 쌓았기에 그 거대한 신라 무덤들은 천 오백년을 저리 살아남았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신라가 시멘트를 썼다고 보는데, 그러지 않고서는 물이 흘러들어 붕괴하지 않을 수 없다! 

저 신라 흙더미에는 도대체 어떤 시멘트를 썼을까? 

나는 논흙을 썼다고 본다. 

흙을 쌓고 위에 논흙으로 피복하고, 다시 그 위에다가 흙을 다져 쌓고 그 위에 다시 한 겹 논흙을 피복했다고 본다.

고고학에서 말하는 성벽을 쌓을 때 쓰는 부엽층, 그 부엽층은 실은 나는 논흙 뻘흙이고 본다. 

그 논흙 뻘흙에 수풀이랑 풀을 섞었을 뿐이다.

그래야 그 흙은 단수가 되며 물이 흘러들지 못한다. 

부엽공법은 새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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