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맹자孟子가 직접 찬술했다고 간주하는 그의 생철학서 맹자孟子 현행 통행본을 기준으로 장혜왕장구梁惠王章句 上 제4장에는 다음과 같은 인용이 보인다.
仲尼曰: 始作俑者, 其無後乎. 爲其象人而用之也.
이 구절이 두고두고 해석 논란을 일으키거니와 이 문제는 잠시 제껴두고 저 말은 대략 다음과 같은 뜻이 되지 않을까 싶다.
"중니[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덤에 사람 대신 쓰는] 인형[俑]을 처음 만든 자는 후손이 없을 것이다.' [공자가 이리 말씀하신 맥락 혹은 이유는] 그것이 사람 모양을 본떠 만들어 그것을 무덤에 넣었기 때문이다."
이 구절이 왜 논란이 극심한가? 첫째, 공자의 말이라고 했으나 저 말은 현재 우리한테 주어진 자료에 의하는 한 다른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논어에도 없고 그의 말을 이곳저곳에서 저록한 예기니 하는 데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저 말이 쓰인 맥락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맹자는 분명 어떤 텍스트를 근거로 공자의 말이라고 인용했을 것이다.
둘째, 저를 두고 심지어 공자가 사람 대신에 그 모양을 본뜬 인형을 만들어 무덤에 넣는 일을 증오하면서, 사람을 죽여서 혹은 산채로 넣어야 하는 그 방식을 선호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해석에 따른다면 공자는 생사람을 무덤에 넣어야 하는데, 그런 관습을 없애고, 그 대용으로 인형을 만들어 넣기로 개발한 놈한테다가 저주를 퍼부은 셈이 된다.
셋째 인신공희, 곧 순장殉葬과 그 대용으로서의 인형을 묻는 등장 순서를 공자가 혼동했다고 하기도 한다.
고고학적 발굴성과, 그리고 각종 기록을 종합할 때 사람을 그대로 묻는 순장이 먼저 등장하고 훗날 이런 일이 심하다 해서 사람 대신 인형을 만들어 껴묻거리로 넣어주게 된다.
한데 공자는 이런 역사발전 법칙을 혼동해 인형이 먼저 등장하고 나중에 순장이 등장한 것으로 봤다는 것이다.
저 구절이 어떤 맥락에서 이렇게 해석되는지는 좀 더 많은 자료를 보강해야 하거니와, 이 이야기는 너무 깊게 들어가므로 이 정도로 만족하고 그만두기로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맹자가 인용한 저 구절을 무슨 뜻으로 이해해야 할까?
이를 이해하기 위한 첩경은 무엇보다 저 말이 맹자에서 등장하는 맥락이다. 이를 위해 양혜왕장구 상 제4장 전체 맥락을 살펴야 한다.
梁惠王曰: "寡人願安承敎."
孟子對曰: "殺人以梃與刃, 有以異乎?" 曰: "無以異也."
"以刃與政, 有以異乎?" 曰: "無以異也."
曰: "庖有肥肉, 廐有肥馬, 民有飢色, 野有餓莩, 此率獸而食人也. 獸相食, 且人惡之; 爲民父母, 行政, 不免於率獸而食人. 惡在其爲民父母也? 仲尼曰: '始作俑者, 其無後乎!' 爲其象人而用之也. 如之何其使斯民飢而死也?"
양 혜왕이 말했다. "과인이 선생님 가르침을 받들고자 합니다. [그러니 한 수 알켜 주십시오.]"
맹자께서 대답하셨다. "사람을 죽이는 데 몽둥이를 쓰는 일과 칼로 쓰는 일에 다를 것이 있습니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 "다를 것이 없습니다."
"푸줏간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 얼굴에는 주린 빛이 있으며,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널려 있다면, 이는 짐승을 몰아다가 사람을 먹게 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짐승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조차 사람이 미워하거늘 백성의 부모가 되어서 정치를 행하는 것이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먹게 하는 것을 면치 못한다면 그 백성의 부모된 보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공자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맨 처음 인형을 만든 자는 그 뒤(자손)가 없을 것이다.' 이는 사람 모양을 본떠서 만들어 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백성으로 하여금 굶어 죽게 만들 수가 있겠습니까?"
이 맥락으로 본다면 몽둥이 살인=칼 살인, 칼 살인=정치살인이라는 논지를 편다. 군주가 백성을 살피지 못하고 죽게 하는 데는 실제 칼이나 몽둥을 써서 죽이는 일과 굶어죽게 하는 일에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결국 군주라면 모름지기 백성들을 등따시고 배부르게 해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맥락에서 공자의 저 말이 등장한다.
결국 저 말은 사람을 실제로 산채로 무덤에 넣어 죽이는 일과 마찬가지로, 비록 생사람은 죽이지 않더라도 그 사람 모양을 본떠 무덤에 넣는 일은 생사람을 죽이는 일과 같다는 뜻이다.
맹자는 저 말을 꺼내기 직전 이 맥락을 더욱 확실히 한다.
"짐승끼리 서로 잡아먹는 것조차 사람이 미워하거늘...."
간단하다. 짐승조차도 서로 잡아먹지 않는데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어서야 되겠는가?
따라서 맹자가 인용한 저 공자의 말은 산 사람을 무덤에 넣어 죽이는 일이나, 애써 그것을 피한답시고 사람 모양을 본떠 무덤에 넣는 일은 마찬가지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될 일이라는 맥락이다.
나아가 더욱 중요한 점은 그 진정한 뜻이 무엇이건, 맹자의 저 말, 더욱 정확히는 맹자가 인용한 저 공자의 말은 이후 2천 년 중국 유가儒家의 위대한 인권선언이 된다.

유가의 종조라는 공자님과 그것을 이은 아성亞聖인 맹자님께서도 인간으로서는 차마 할 짓이 아니라는 이유로 산 사람 생매장은 물론이고, 그것을 흉내 낸 도용陶傭 부장조차도 비인간적이라 해서 배격하게 된다.
하지만 이후 역사 전개를 보면 웃기는 것이 중국 역사는 공자 혹은 맹자의 바람과는 달리 전연 반대로 흘러갔다. 흔히 중국의 유가가 지배한 사회라 하지만 천만에!
저런 공자 맹자의 가르침 혹은 경고도 아랑곳없이 더욱 맹렬히 인형을 순장자를 대신해서 묻는 풍습으로 굳어져 갔다.
순장은 전국시대 말기, 늦어도 전한 시대에는 대략 자취를 감추어 가는 흔적이 뚜렷한데, 순장이 사라지는 대신 더욱 맹렬히 무덤에는 각종 인형이 등장하게 된다.
이것이 왜 천마도 장니 이해에도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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