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부르는 고인돌은 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고인돌이 아니라 본래는 석실분 주체 시설 흔적이라는 말을 나는 거듭거듭했거니와
그런 돌로 쌓고 덮은 무덤방이 껍데기, 그러니깐 그것을 피복한 흙더미가 날아가버리고 난 모습이 고인돌이라
그 피복 흙더미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 중 하나라,
실은 저 모습은 우리네 집안 할머니 할아버지 무덤이다.
것도 관리를 조금만 소홀히 하면 몇 년이 가지 못해 평지가 되어 버리고 만다.
저렇게 붕괴한 무덤, 다시 쌓아 올리지 않으면 결국 평지가 되지 뭐가 되겠는가?
저렇게 해서 사라진 무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다 사라졌다.

이건 놀랍게도 조선 왕릉 중 하나다.
조선 19대 숙종 후궁 중 한 명인 영빈 김씨(1669~1735)가 묻힌 남양주 소재 무덤이다.
저렇게 홀라당 붕괴한 무덤 흙이 나는 조선시대 그것으로 보지 않는다.
후대에 손 본 그 흙이 무너졌을 것이다.
암튼 그렇게 잘 쌓았을 조선 왕릉도 손 보지 않으면 저런 식으로 해서 영원히 사라진다.
홀라당 사라진다.
저리 쉽게 사라진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항용 왜 신라무덤, 주로 적석목곽분이 되겠지만 그것들을 저리 살아남았는지가 몹시도 궁금하기 짝이 없다.
물론 그런 적석목곽분도 대부분 사라지고 남은 것이 지금 보는 그것들이지만, 도대체 어떻게 쌓았기에 그 거대한 신라 무덤들은 천 오백년을 저리 살아남았단 말인가?
그래서 나는 신라가 시멘트를 썼다고 보는데, 그러지 않고서는 물이 흘러들어 붕괴하지 않을 수 없다!
저 신라 흙더미에는 도대체 어떤 시멘트를 썼을까?
나는 논흙을 썼다고 본다.
흙을 쌓고 위에 논흙으로 피복하고, 다시 그 위에다가 흙을 다져 쌓고 그 위에 다시 한 겹 논흙을 피복했다고 본다.
고고학에서 말하는 성벽을 쌓을 때 쓰는 부엽층, 그 부엽층은 실은 나는 논흙 뻘흙이고 본다.
그 논흙 뻘흙에 수풀이랑 풀을 섞었을 뿐이다.
그래야 그 흙은 단수가 되며 물이 흘러들지 못한다.
부엽공법은 새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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