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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문화 이모저모

임당동에서 봐야 할 것은 눈에 뵈는 조 들깨가 아닌 뵈지 않는 쌀!

by 세상의 모든 역사 2026. 8.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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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맥 기슭 깡촌에서 자란 나한테 압독국 터전이라는 경북 경산은 축복하는 땅이라 한 눈에 봐도 드넓은 충적대지라

사방 둘러봐도 산이라고 저 멀리 조망하는 팔공산 정도가 산이라 할 만한 정도라




실제 이 일대는 금호강이 펼치는 평야지대이며 특히나 그 햄심구역으로 지목하는 임당동이니 조영동이니 하는 유적이 밀집하는 데는 평야와 앝은 구릉밖에 없어

이 일대를 정좌한 영남대가 그리 캠퍼스가 큰 이유는 이 넓은 대지를 헐값에 불하받았기 때문이다.




근자 개관한 임당동유적전시관이 압독국 특별전 비름빡에 내건 설명판 중 하나라

무덤이라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마는 저 기술에서 이상한 점 없는가?

조 피 들깨는 보이는데 왜 쌀이 보이지 않는지가 궁금하지 않은가?

풍토 지형 보면 쌀농사가 주업이었을 법한데 그 많은 무덤 파제끼고 주거지까지 팠다는데 현재까지 쌀 혹은 나락은 코빼기도 뵈지 않는다.

왜 그럴까?

첫째 발굴조사에서 걸려들지 않았을 수 있다.

영남대박물관 김대욱 선생은 이런 질문에 내심 이쪽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느냐 하는 느낌을 받았거니와 이르기를

삭아 없어졌을 수도 있다 보는데 실제 토기 같은 데서는 (볍씨)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하거니와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둘째 나는 이쪽인데 애초 벼농사는 짓지 않았거나 지었다 해도 제수음식이나 쓸 법한 수준이었고 실제 주류 농경은 조 수수 기장 나아가 밀 중심 잡곡농경일 가능성이 있다.

고고학은 생득으로 증거주의를 채택하면서 눈에 뵈는 것만 주시하는 경향이 그네는 아니라 하지만 강고하기 짝이 없는데 그보단 없는 것을 봐야 한다.

임당동 무덤에서 봐야 할 것은 조 피 수수 기장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쌀 혹은 벼다.

왜 그네는 코빼기도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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