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인 도착 무렵 호주엔 500만 명 원주민 거주

1789년 호주 원주민 인구를 황폐화한 천연두 대유행 원인은 오랫동안 논쟁거리였다.
이제 새로운 모델링 연구가 그 유력한 해답을 제시한다.
바로 1788년 호주 정착을 위해 파견된 영국 함대(제1함대First Fleet)가 천연두를 옮겨왔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호주 원주민에게 미친 질병의 영향을 수학적으로 모델링한 것으로, 발병 원인이 호주 최북단에서 어업에 종사하던 인도네시아 섬 주민들과의 접촉에서 비롯되었다는 기존 주장을 반박한다.
이번 연구 공동 저자이자 민간 컨설팅 회사 EMM 컨설팅 소속 고고학자인 앨런 윌리엄스Allan Williams는 7월 9일 네이처 휴먼 비헤이비어(Nature Human Behaviour)에 발표한 이 연구 결과를 라이브 사이언스(Live Science)에 소개하며, 발병의 유력한 원인은 영국 의료진이 접종용으로 보관한 건조된 천연두 딱지 샘플vials of dried smallpox scabs이라고 밝혔다. (천연두 백신은 1790년대 에드워드 제너Edward Jenner가 발명했다.)
일부 역사학자는 살아있는 천연두 바이러스가 영국 포츠머스에서 현재 시드니 남쪽에 위치한 보타니 베이Botany Bay까지 8개월에 걸친 배 여행 동안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사 결과, 천연두 딱지가 담긴 유리병은 함대가 항해 중 불과 몇 달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이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정박했을 때 보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윌리엄스는 말했다.
천연두 대유행은 원주민 공동체를 황폐화했고, 호주 원주민 문화의 급속한 소멸에 기여했다고 그는 말했다.
연구에 따르면 약 22만 명이 이 질병으로 사망했으며, 20세기 초 호주 당국은 역사 기록을 남기려 할 당시 원주민 인구 실제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고 한다.

미스터리한 발병
영국 해군 장교 제임스 쿡James Cook이 호주를 탐사한 지 수십 년 만에 영국은 호주 대륙에 정착하기 위해 배를 보냈다.
호주로 향한 영국 "제1함대"는 해군 함정 두 척, 죄수 수송선 6척, 보급선 세 척 등 총 11척으로 구성되었다.
영국은 호주가 법적으로 누구의 소유도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곧 보타니 만 토양과 수질이 좋지 않아 그곳을 떠나 현재 시드니 일부인 포트 잭슨의 시드니 코브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그들은 영국 국기를 게양하고 호주 대륙 전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했다.
최초 함대가 도착했을 당시 인근 원주민 공동체에서는 천연두 발병 징후가 전혀 없었지만, 이후 수십 년 동안 천연두는 엄청난 인명 피해를 초래했다.
함대에서 천연두 감염 사례가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천연두는 현재 인도네시아에 속한 술라웨시Sulawesi 섬 마카사르Makassar 지역 주민들과의 접촉을 통해 호주 북부 해안 열대 지역에 유입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북부 해안 발병에 대한 새로운 컴퓨터 모델링 결과는 천연두가 북부에서 호주 남동부로 확산되었을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윌리엄스 교수는 두 지역이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사람이 살지 않는 사막으로 분리되어 있다는 점을 비롯한 여러 가지 문제를 지적했다.
한편, 포트 잭슨 인근 원주민 공동체 천연두 발병에 대한 모델링 결과는 발병 근원지가 바로 그곳이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연구진은 밝혔다.
공동 저자인 매튜 코디 니츠케Matthew Cody Nitschke (애들레이드 플린더스 대학교Flinders University in Adelaide 컴퓨터 모델링 전문가)는 라이브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천연두 발병이 북부에서 시작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이 이제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반면, "그건 제1함대였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주장한다.
당시에는 질병 전파 이론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천연두 확산은 우연히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윌리엄스는 말했다.

기존 견해 수정
이번 연구는 동일 연구진이 같은 저널에 게재하기 위해 준비 중인 두 번째 연구를 인용한다.
이 연구는 제1함대가 도착했을 당시 호주 원주민이 최대 300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이는 이전 연구에서 제시된 약 30만 명보다 훨씬 많은 수치다.
초기 호주 원주민 공동체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를 부분적으로 기반으로 한 두 번째 연구는 영국인들이 도착하기 전 호주의 이론적 인구 수용 능력이 최대 500만 명에 달했으며, 특히 자원이 풍부한 북부와 남동부 지역에 집중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전의 약 30만 명이라는 원주민 인구 추정치는 1930년대에 발표된, 당시 인구 감소로 인해 왜곡된 자료에 근거한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스는 "사람들이 실제로 호주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지 파악하려고 했을 때는 이미 100년 동안 질병, 변경 지역의 폭력 등 온갖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태즈메이니아 대학교 역사학자 헨리 레이놀즈Henry Reynolds는 라이브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연구가 천연두 발병이 북부 해안에서 시작되었다는 기존의 통념을 반박한다고 밝혔다.
그는 "천연두가 북부에서 시작되어 (제1차 함대가 도착한) 정확한 시기에 호주에 도달했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가능성이 낮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캔버라 소재 호주국립대학교 역사학자 앤 맥그래스Ann McGrath도 이에 동의했다.
그녀는 이메일을 통해 "이번 최신 연구의 강력한 학제적 접근 방식은 이러한 주장을 설득력 있게 반박할 뿐만 아니라 1788년 이전 원주민 인구에 대한 훨씬 더 광범위한 추정치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Article Sources
Nitschke, M., Williams, A., Ingrey, S., Griffiths, B., Pitt, N., Russell, L., Ulm, S., Beller, K., Bird, M., Fatima, S., McNiven, I., Saltre, F., Bashford, A., Wilson, C., & Bradshaw, C. (2026). Stochastic models indicate rapid smallpox spread and mass mortality of Indigenous Australians after colonial exposure. Nature Human Behaviour. https://doi.org/10.1038/s41562-026-02504-6
이에 대한 해설은 아래 신동훈 선생 아티클을 참고하라.
천연두 예방법으로서의 인두법과 종두법
천연두 예방법으로서의 인두법과 종두법
아래 김단장께서 쓰신 호주 천연두 대유행과 관련해 인두법 이야기를 보충한다. 인두법 (variolation)과 종두법(inoculation)은 둘다 천연두 (smallpox) 예방법이다. 인두법이 종두법보다 먼저 있었다.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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