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자 윌리엄 William the Conqueror 은 생전에 ‘개자식 윌리엄 William the Bastard’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는 아버지가 무두질하는 사람 tanner 의 딸과 불륜을 저지른 결과였지만 얼굴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런던 탑 중심인 화이트 타워는 1078년 정복자 윌리엄이 지었으며 새로운 지배 엘리트에 의해 런던에 가해진 탄압의 분개한 상징이었다.
그는 요크 York 에서 봉기가 일어나자 그곳에 사는 모든 남자, 여자, 아이를 죽이라는 명령과 함께 군대를 북쪽으로 보낸 유난히 잔인한 군주였다.
약 15만 명이 죽었고 영국 북부 많은 지역은 대대로 인구가 감소했다.
당대 연대기는 이 정벌의 야만성, 파괴의 거대한 규모, 약탈, 불태우기 및 학살로 인한 광범위한 기근을 생생하게 기록한다.
연대기 작가 Orderic Vitalis 는 이렇게 썼다.
"왕은 적들을 사냥하기 위해 어떤 짓도 마다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을 베고 집과 땅을 파괴했다. 그가 그렇게 잔인함을 보인 적은 없었다. 이것은 진정한 변화를 가져왔다. 부끄럽게도 윌리엄은 죄 없는 자를 죄 있는 자로 처벌하면서 분노를 억제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그는 농작물과 무리, 도구와 음식을 잿더미로 만들라고 명령했다. 10만 명 이상의 사람이 기아로 죽었다. 나는 이 책에서 윌리엄을 자주 칭찬했지만, 이 잔인한 학살에 대해 좋은 말을 할 수 없다. 신은 그를 벌할 것이다."
윌리엄은 1087년 노르망디 Normandy 반란을 진압하며 죽었다.
말년에 갈수록 윌리엄은 비만이 되었고, 그의 몸은 묻히기 위해 카엔 Caen 으로 가는 여정에서 더 부풀어 올랐다.
하도 뚱뚱해 관에 시신을 들어가지 않아 억지로 쑤셔넣었으며 그 과정에서 배가 터졌다.
냄새가 정말 끔찍해서 뚜껑을 빨리 닫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그의 런던 입성으로 영어는 프랑스어 지배에 놓기게 된다. 무지막지한 노르망디 불어가 영어로 흘러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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