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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9

양웅揚雄의 방언方言이 말하는 조선 방언 양웅揚雄(기원전 53~기원후 18)은 전한前漢 말기~왕망 시대를 대표하는 최대 부賦 작가라, 백년 전 이 분야 우뚝한 존재로 사마상여가 있었다면, 전한 말기에는 그를 첫손에 꼽는다.다만, 그 부화浮華 과장하는 문학이 싫다며 훗날에는 그것을 버렸거니와, 그러면서 그 대안으로 이른바 전문 학술 연구에 천착해 철학 분야 우뚝한 서적으로, 심오한 철학원리를 탐구한 태현경太玄經이란 저술을 남기는가 하면, 방언 연구에도 주력해 그 분야 연구를 집대성한 방언方言이라는 불후한 성과물을 제출한다.정식 이름이 유헌사자절대어석별국방언輶軒使者絶代語釋別國方言인 이 방언은 간단히 말해 당시 지역별 방언 사전이다. 한자를 모국어 혹은 표준문자로 채택한 각 지역에서 드러나는 독특한 말들이 무엇이며, 그에 해당하는 표준어(당시는 서안.. 2024. 5. 29.
위만조선은 중국인 정복국가다 이 평범성을 왜 그리 쉽사리 망각하는지 모르겠다. 위만조선은 기존 기자조선 혹은 고조선이라 지칭하는 왕조를 정복하고 들어선 새로운 왕조다. 이 왕조 오야붕은 위만이라 하는 중국 도망인이다. 그가 한 제국 성립 이후 이성 봉건 제후들을 유방이 처단하는 과정에서 걸려든 연나라 제후이자 왕인 노관이 처단되는 와중에 그 혼란을 피해 연燕과는 그 동쪽 변경을 접한 고조선으로 도망쳐 들어가 같이 도망가고 혹은 나중에 합류한 연나라 유민들을 규합하고는 고조선 준왕한테서 그 서쪽 변경을 지키는 총알받이 하라고 방 백리를 떼어주고서는 너 거기서 총알받이 잘하고, 국경 수비대 역할 잘 하라고 분봉해준 작은 고조선 제후였다. 하지만 야금야금 힘을 키운 위만은 마침내 때가 되었다고 판단하고서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찬.. 2024. 3. 30.
고조선 요서설에 대한 두 가지 생각 최근에는 요서 십이대영자와 심양 정가와자를 묶어 초기 고조선으로 보고 후기 고조선에 평양을 지목하는 설명이 학계에서 힘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안다. 실제로 필자가 아는 관련 전공의 고고학자 분들에게도 이에 대한 의견을 사견을 전제로 확인한 적 있었는데 대부분 요서-요하의 십이대영자-정가와자를 초기 고조선으로 지목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주장은 사실 최근에서 두드러진 변화로 필자가 아는 한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20년 사이에 이루어진 변화라 할 것이다. 십이대영자와 정가와자를 초기 고조선으로 규정하는 시각에 있어 필자의 의견을 조금만 적어본다. 문외한의 넋두리라 생각해 주기 바란다. 첫째. 요서 십이대영자를 고조선이라고 최초로 정확히 지목한 사람은 사실 따로 있다.. 2024. 3. 30.
왕검성王險城과 王公设险以守其国 최근 고조선 왕검성(왕험성) 어원에 관련하여 중국 쪽에서는 이런 주장도 나온다. 王险城,是古朝鲜的都城,“王险”之名出自《易经》“王公设险以守其国”。 公元前108年,卫满朝鲜脱中华以自立受到西汉的征讨,王险城陷落,古朝鲜灭亡。 왕검성王险城은 고조선古朝鲜 도성都城으로 “왕험王险”이라는 말은 《易经》의 구절 곧, “왕공王公은 험난함을 쌓아 그 도읍을 지킨다”에서 왔다. 기원전 108년, 위만조선卫满朝鲜이 탈 중화해서 자립하여 서한西汉의 정토征讨에 이르러 왕험성이 함락됨으로써 고조선은 멸망했다. 왕검성은 다름 아닌 역경 이 구절을 따서 지었다는 이야기다. 왕검성에 대해서는 고조선의 군주의 명칭이 왕검이었다는 주장이 있고, 또 한국말 임금의 음사라는 주장도 있어 기왕의 통설과 부딛히는 이야기지만 흥미로운 부분이 있어 여기 .. 2024. 2. 16.
《내가 보는 위만조선과 낙랑》(6) 위만은 쿠데타 성공한 프리고진이다 우리는 위만조선 사회를 접근하는 한 방식으로서 이른바 비교사 방법을 적용해 저 먼 반대편 남월왕국을 살피고, 그 인접 북쪽 장사국 마왕퇴 한묘를 거쳐, 그리고 중원 문화 한복판인 중산국을 여행했으니 이제 여전히 실체가 오리무중인 위만조선을 해명할 길을 열었다고 본다. 출현하지 아니하는 위만조선은 어떠해야 하는가? 첫째 그 창업주 위만을 필두로 그 아들로 사서에 이름이 남지 아니하는 제2대 왕이 묻힌 곳은 철저히 중국적 색채가 나는 무덤을 썼고, 그 안에 묻혔으며, 부장품은 온통 동시대 서안과 낙양에서 통용하는 물품으로 깔았다. 시체는 금루옥의金縷玉衣라 해서 금실로 꼬아 엮어만든 옥을 걸쳐야 하며, 주변으로는 벽璧과 같은 동시대 중국에서 생산한 옥제품으로 넘쳐나야 한다. 둘째, 그 왕릉은 산속에 들어가며 .. 2023. 7. 5.
한국사 교과서의 그림 이야기 이 지도는 필자가 고등학교 때부터 들어가 있던 그림인데, 그 당시에는 동이족의 분포 어쩌고 하는 부분 표시가 있었는데 그건 도저히 말이 안 된다 싶었는지 그건 빠진 것 같고, 나머지 탁자식 고인돌, 비파형동검 분포 지역까지는 좋은데, "고조선 관련 문화범위"라고 하고 만주 일대와 북한지역을 포괄하여 거의 고구려 땅 만하게 그려 놓은 저 빨간색 부분은 비파형동검의 분포도 아니고, 탁자식 고인돌의 분포도 아니며 세형동검의 분포도 아니고 그 어떤 토기유형의 분포와 맞지도 않고, 역사기록하고도 잘 안맞아서 도대체 저 그림에서 "고조선관련문화의 범위"라는게 뭘 의미하는 것인지 짐작도 안간다. 예전에도 이 문제에 대한 지적이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아직도 별문제 없이 교과서에 실려 있는 듯. 2023.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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