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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거병묘2

곽거병霍去病과 기련천산祁連天山, 그리고 그의 무덤 망가진 몸을 이끌고 《사기史記》 이광李廣·위청衛靑 그리고 곽거병霍去病 열전을 막 통독했다. 그들이 묻힌 곳을 막 다녀와서인가? 이전에 읽을 때보단 조금은 새롭게 다가온다. 곽거병 죽음과 그에 따른 장송葬送 의례가 이 열전엔 잠깐 보이거니와, 그의 무덤을 기련산祁連山을 본떠 만들었다는 구절이 눈에 띈다. 기련산祁連山..기련은 흉노어로 '하늘'이란 뜻이거니와 그런 까닭에 이광 열전엔 이를 '기련천산祁連天山'이라 표기하기도 했으니 '역전앞'과 같은 표현 발상이다. 앞선 포스팅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한 무제漢武帝가 묻힌 무덤인 무릉茂陵을 위성처럼 감싼 소위 배장묘陪葬墓 중에서도 그 동쪽 위청과 김일제 묘 사이에 위치한 곽거병 묘만큼은 동아시아 묘제 역사에서는 돌발 중의 돌발이다. 쐐기형 방형 봉분인 그의 무덤에는.. 2023. 5. 21.
돌발하는 곽거병 무덤 언젠가부턴 책을 사오지 않는다. 이번 서안 답사에서 구득한 유일한 책자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곽거병은 무제시대 대흉노 전쟁의 영웅이다. 그는 대장군 위청의 조카이며, 대장군 곽광의 이복형이다. 당연히 그는 죽어서 한 무제 유철 무덤 곁에 묻혔으니, 그 시대 봉사한 이런 주요한 신하들을 묻은 무덤을 배장묘陪葬墓라 하거니와, 말하건대 시다바리 무덤이라는 뜻이다. 그의 무덤은 한무제능 곁에 위청 김일제 묘 사이에 자리를 잡았으니, 죽어서도 생전 계급을 갖고 가는 까닭에 정1품 대장군 위청이 무덤이 가장 크고, 표기장군 곽거병은 두번째 크기이며, 곽거병이 포로로 잡아온 흉노 투항 왕자 김일제 묘는 셋 중에서는 가장 작다. 작다해도, 봉황대 무덤 만하다. 이 곽거병 무덤은 중국사 혹은 세계사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2022.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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