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턴 책을 사오지 않는다. 이번 서안 답사에서 구득한 유일한 책자다.
널리 알려졌다시피 곽거병은 무제시대 대흉노 전쟁의 영웅이다.
그는 대장군 위청의 조카이며, 대장군 곽광의 이복형이다.
당연히 그는 죽어서 한 무제 유철 무덤 곁에 묻혔으니, 그 시대 봉사한 이런 주요한 신하들을 묻은 무덤을 배장묘陪葬墓라 하거니와, 말하건대 시다바리 무덤이라는 뜻이다.
그의 무덤은 한무제능 곁에 위청 김일제 묘 사이에 자리를 잡았으니, 죽어서도 생전 계급을 갖고 가는 까닭에 정1품 대장군 위청이 무덤이 가장 크고, 표기장군 곽거병은 두번째 크기이며, 곽거병이 포로로 잡아온 흉노 투항 왕자 김일제 묘는 셋 중에서는 가장 작다.
작다해도, 봉황대 무덤 만하다.
이 곽거병 무덤은 중국사 혹은 세계사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장면이 있으니, 흉노 혹은 그리 간주되는 사람들을 발굴 아래 짓밟는 석마石馬 조각이 그것이다.
한데 어찌하여 이 곽거병 무덤은 나랑 직접 인연이 닿지 않다가 이번에야 겨우 그 실물을 만났으니, 현장을 둘러보고 놀라운 점은 주변 위청 김일제 묘가 이렇다 할 석조각들이 없음에도 유독 곽거병 무덤만은 무수한 석조각이 분포한다는 점이었다.
왜 그럴까 하는 고민을 안겨주거니와, 이런 석조각은 분명 돌발이다. 동시대 다른 황제능 그 어디에도 봉분 주변을 두른 석조각들이 발견되지 않는다.
있었는데 없어졌는지는 모르겠거니와, 후한 광무제 낙양 무덤에는 그 전면에서 발견되었다고 전하는 석마인지 하는 조각 하나가 덩그러니 낙양박물관에 소장 전시 중일 뿐이다.
이들 신하들 배장묘도 그렇고 황제 능 역시 그 흔적이 많이 사라지긴 했지만, 대개 방형이라, 그 자세한 실측 자료들을 봐야겠지만 대체로 동서남북 방향에 맞추었을 것으로 짐작한다.(내 짐작은 틀린 적이 없다!)
이거 하나 달랑 들고 서안에서 돌아왔다. 실물과 현장을 봤으니, 이에 기술된 내용들이야 뭐 더 봐서 무엇하겠는가?
고작 사기 곽거병 열전과 무제 본기, 흉노열전 긁어다가 정리하고 조각품 양상을 기술하기밖에 더 했겠는가?
이쪽 수준이나 한국 고고학 수준이나 피장파장이다.
(2018.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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