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몸을 이끌고 《사기史記》 이광李廣·위청衛靑 그리고 곽거병霍去病 열전을 막 통독했다. 그들이 묻힌 곳을 막 다녀와서인가? 이전에 읽을 때보단 조금은 새롭게 다가온다.
곽거병 죽음과 그에 따른 장송葬送 의례가 이 열전엔 잠깐 보이거니와, 그의 무덤을 기련산祁連山을 본떠 만들었다는 구절이 눈에 띈다.
기련산祁連山..기련은 흉노어로 '하늘'이란 뜻이거니와 그런 까닭에 이광 열전엔 이를 '기련천산祁連天山'이라 표기하기도 했으니 '역전앞'과 같은 표현 발상이다.
앞선 포스팅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한 무제漢武帝가 묻힌 무덤인 무릉茂陵을 위성처럼 감싼 소위 배장묘陪葬墓 중에서도 그 동쪽 위청과 김일제 묘 사이에 위치한 곽거병 묘만큼은 동아시아 묘제 역사에서는 돌발 중의 돌발이다.
쐐기형 방형 봉분인 그의 무덤에는 지금도 무수한 화강암 돌이 마치 호석護石처럼 두르고 있거니와, 현재 상태는 정형성이 전연 없이 어지럽게 늘려 있어, 그 본래의 배치 양상이라든가 그 목적을 정확히 가늠하기는 어렵다.
그의 봉분 남쪽 전면에는 석마상石馬像 등이 있지만 이것이 본래 자리인지 아닌지는 나는 판단을 유보하며, 아닌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의 봉분 주변에는 이들 외에도 적지 않은 화강암 동물 조각이 있다.
따라서 나는 곽거병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는 이런 돌조각 배치 양상이 사기 저 한 구절에 비밀이 있다고 본다. 기련산을 본떠 그의 무덤을 만들게 했다!
기련산이 대체 무엇이기에 이리 했을까? 저 기련산은 특정한 산을 지칭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중앙아시아와 중국 경계를 이룬 천산산맥天山山脈을 말한다.
준령이 즐비한 까닭에 언제나 산 정상엔 만년설이라, 그 장엄함은 직접 보면 안다. 왜 흉노가 그것을 하늘이라 불렀는지 현장을 보면 안다.
한데 그 기련을 추상에서 해체해 구상화할 때 저런 무덤 양식으로 나타났다??? 이건 내가 풀어봐야겠다. 중국 쪽에서도, 일본넘들도 내가 납득할 만한 연구가 없고, 현장 가서 기념 사진 박기에 여념이 없는 한국넘들이야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중국사에서 봉선封禪은 오직 천자만의 특권이었으니, 이를 실행한 역대 제왕은 진 시황제 이래 송 진종에 이르기까지 오직 7명만 있을 뿐이다.
한데 예외가 있다. 그 예외가 바로 곽거병이다. 곽거병이 바로 흉노를 칠 적에 기련산에 올라 봉선대전封禪大典을 치렀다. 그것도 신하가 봉선을 치렀으니, 이는 말할 것도 없이 한 무제 허락을 사전에 득한 다음에 행한 일이었다.
봉선封禪을 무슨 개뼉다귀로 아는 놈들한테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이랴?
일본놈 중국놈 똥딱이만 하는 중국사 동양사는 집어치자.
내가 주체로 하는 그런 역사, 세계사를 왜 하지 않는가?
(2018. 2. 10)
***
곽거병霍去病은 이름이 독특한데 거병去病이란 말할 것도 없이 병이야 물렀거라! 하는 뜻이다. 그땐 하도 유아 사망이 많아 이렇게 이름을 지어 병치레 없기를 바랐다. 그런 까닭에 거병 혹은 그와 비슷한 이름이 무척이나 중국사에서 많이 발견된다. 우리한테 흔한 개똥이 같은 이름과 같은 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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