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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3

저 드넓은 평야는 언제 등장했나? 2016년 9월 4일 저 사진은 탑재하며 나는 아래와 같이 썼다. 만경평야. 조선시대에 이런 풍광 혹은 이 비스무리한 풍광 가능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저 대부분은 황무지였다. *** 이 문제 나는 심각히 이제는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역사학 고고학 모두 말이다. 이 문제가 그만큼 심각하다 보기 때문이다. 한반도에 저와 같은 평야는 언제 등장했을까? 아득히 저 먼 옛날? 혹은 조선시대? 혹은 수리조합 시대? 나는 수리조합 이후를 상정한다. 저런 평야가 애초에 불가능한 이유는 잦은 범람과 그에 따른 침수 피해, 높아진 하상 때문이다. 저 논쟁이 제대로 한판 붙은 적은 있다. 다만 그 논쟁은 극심한 정치 분쟁이 되는 바람에 본질을 여전히 회피한다고 본다. 신석기시대야 그렇다 치고, 청동기시대는 어떠한가?.. 2024. 9. 4.
왜 한국의 농경은 일본과 다른가 간단히 예를 들어보자면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이렇다. 일본은 청동기와 철기가 동시에 유입되는 반면 한국은 청동기와 철기의 도입에 시간차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청동기시대 설정이 가능하다는 설법이다. 농경도 마찬가지이다. 잡곡과 도작이 일본은 거의 동시기에 한반도에서 유입되었다고 본다. 물론 최근 일본에서는 조몽시대 원시적 농경론을 입론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하는 소리고, 결국 잡곡과 도작은 일본에 발달된 농경 형태로 한꺼번에 유입되었다는 말이다. 양자간 차이가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도 잡곡과 도작의 도입에 차이가 없었을까? 도작 도입 이후에나 제대로 된 농경이 이루어졌겠는가 하는 말이다. 도작 이전에는 뭐 내놓을 만한 농경이 없다는 건 일본의 시각이다. 일본 금속문화 시각으로 한국을 그대로 재단.. 2024. 7. 3.
한국 농업의 시작은 일본 중국과 어떻게 다른가 한국 농업의 시작은 일본 중국과 어떻게 다를까. 중국은 문명의 중심지로 농경과 가축의 도입이 동아시아에서 가장 빨랐고, 심지어 어떤 작물과 가축은 중국 내에서 처음 재배와 사육이 시작되기까지 했다. 따라서 문명 중심지적 관점에서 중국의 농업문명사를 바라보는 게 옳다. 반면 일본의 경우는 조몽시대에 뭐 원시적 농경이 있었네 어쩌고 하지만 제대로 된 농경은 야요이시대와 함께 시작되었기 때문에 잡곡과 도작이 한꺼번에 거의 비슷한 시기에 다른 농경문화의 유산과 함께 일시에 열도로 한꺼번에 밀려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한국은 중국처럼 문명 중심지도 아니고, 일본처럼 완성된 형태의 농경이 밀려든 지역도 아니다. 여기는 농경의 구성요소, 잡곡, 도작, 그리고 심지어는 각 종 가축들까지도 하나씩 하나씩 따로 전.. 2024.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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