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반응형

무덤19

소분掃墳 vs. 벌초伐草 묘소 주변 잡풀을 베서 정리하는 일을 소분이라 한다. 주로 추석 직전에 한다. 요샌 이 일이 산업으로도 발전해 그 대행이 성행하기도 하고, 또 예초기刈草機라 해서 이럴 때 쓰는 기계를 전문으로 맹글어 파는 업체도 생겨났다. 이 일을 내가 서울에 올라와선 소분하러 간다 하니 사람들이 거의 열명 중 열명이 소분이 뭐냐 되묻곤 했다. 집성촌인 우리 고향에선 다 소분한다 하지 벌초한다곤 하지 않는다. 한데 이를 서울 친구들은 벌초한다 말하더라. 벌초는 잡풀을 베는 일 전반을 의미하지 무덤을 정리한다는 의미는 없다. 따라서 저 말을 저 문맥에 따라 쓰려거든 모름지기 산소 벌초하러 간다고 해야 한다. 그에 견주에 소분은 그 대상이 모름지기 무덤이니 저 말이 정확하다. 벌초는 풀을 벤단 뜻이요 소분을 그것을 포함해 .. 2019. 9. 13.
장개 두 번 가지 마라 복잡하다. 실은 내 선친도 장개 두번 가시는 바람에 묘소를 우째해얄지 좀 고민이다. 봉분 세 개를 만들어야는데 그 상대적 위치도 고민이다. 부부를 같은 봉분에 합장할 때도 그리고 봉분은 따로 하지만 같은 구역에 놓을 때는 대체로 남자가 우측, 여자가 좌측이라 물론 좌우 기준은 상주가 아니라 고인 기준이라 그것이 예법에 맞는다 해서 저리 배치하나 가끔 변태變態도 있어 거꾸로 하기도 한다. 한데 부인이 둘이면 어찌하는가? 이 역시 예법엔 있을 것이로대 지금은 기억에 나지 아니한다. 셋이면, 넷이면 또 우째야는가? 신라 자비마립간은 셋이었다. 요는 장개는 한 번 가고 말지 두번 하지 마라. 자식들 골치 아푸니깐... 아 참...사진은 강남 세곡동인가? 그짝 광평대군 묘역이다. 2019. 6. 8.
인더스문명은 평화로왔던 지상천국인가 (5) 신동훈 (申東勳·서울대 체질인류학 및 고병리연구실) 앞에서 말했듯이 인더스 문명 도시 유적에서는 공공적인 성격이 강한 citadel 구역과 사람들이 거주한 lower town이 있으며 후자는 매우 균일한 크기의 거주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어 일견해서는 개인간 정치경제적 우위를 확인하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나중에 이 부분에 대해 다시 쓸 기회가 또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지금까지 인더스 문명권에서 "아마도 정치적 권력자"였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묘사했을것이라고 판단하는 유물이 몇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아래의 흉상이다. 인더스 문명에서 유명한 "Priest-King".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제사장과 왕의 성격을 한몸에 가지고 있는 존재였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당시 인더스 문명 도시의 권력 정점에 있.. 2019. 4. 26.
금성산 무덤떼 작약밭에서 무덤은 언제나 그 자리나 꽃은 왔다가고 갔가오고 하니시간에 맞춤하기 어렵노라내가 너를 기다렸으나너는 다녀간 다음이고 내가 떠났으나 너는 그때 왔더라 Taeshik KimDecember 20, 2017 2018. 12. 20.
만고의 역사 함몰한 황제릉에서 한시, 계절의 노래(214) 낙유원에 올라(登樂遊原) [唐] 두목 / 김영문 選譯評 넓은 허공 일망무제외로운 새 사라지고 만고의 모든 역사그 속으로 침몰했네 한나라 왕조 살피건대무슨 일 이루었나 다섯 능엔 나무 없어도가을바람 일어나네 長空澹澹孤鳥沒, 萬古銷沈向此中. 看取漢家何事業, 五陵無樹起秋風. 성당 시대의 이두(李杜)라고 하면 우리는 바로 이백과 두보를 떠올린다. 두 사람은 중국 전통 시단의 쌍벽이다. 하지만 만당(晩唐) 시대에도 이두(李杜)라는 말이 유행했다. 당시 시단을 주름잡던 이상은과 두목을 가리킨다. 두목은 “遠上寒山石徑斜, 白雲生處有人家”라는 「산행(山行)」 시로 천하에 명성을 떨쳤지만 기실 그는 역사를 소재로 흥망성쇠의 비감을 읊는 ‘회고시(懷古詩)’에서 장기를 발휘했다. 이상은은 우리에.. 2018. 11. 11.
묘제墓祭와 봉분 무덤에 가서 조상을 제사하는 행위인 묘제墓制 혹은 묘를 살피는 성묘省墓는 실은 각종 의례서에서는 근거를 찾기 어렵다. 이는 아마도 어느 일정 시기까지 무덤에다가 그 표식인 봉분을 만들지 않은 데서 비롯한 것으로 나는 본다. 중국사를 보면 공자 이전에는 봉분이 없어, 일단 무덤을 쓰고 나면, 그 위치는 후손도 이내 잊어버린다. 그런 까닭에 장소도 모르는 묘제가 있을 수가 없다. 따라서 묘제의 제1 성립 조건은 그 위치 확인이다. 묘제를 둘러싼 이렇다 할 규정이 없는 까닭은 나는 이런 역사성에서 말미암는다고 본다. 묘제 혹은 성묘는 때마다 무덤을 소제하는 행위인 소분掃墳 혹은 잡초를 베어내는 벌초伐草와도 밀접하다. 봉분이 없던 시대, 조상숭배는 자연 조상의 혼이 깃들었다고 간주하는 사당인 종묘宗廟 혹은 가묘.. 2018. 2. 19.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