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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령왕릉 묘권2

보쿠와 열라리나 바까야로데싯따 1971년 7월, 발견 개봉 당시 무령왕릉 대강 유물배치 양상이다. 대강이라 하는 까닭은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하도 개판으로 발굴해서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적어도 위치관계 배치양상은 확실한데 무덤길 입구 진묘수랑 그 바로 앞쪽 묘권墓券 두 장 배치관계도다. 묘권 두 장은 무덤 안쪽에 있는 사람 기준으로 텍스트 방향을 설정했다. 다시 말해 저 문건은 무덤 주인공인 무령왕릉 부부가 화자話者이자 발신자다. 이 점 잊어서는 안된다. 이 무령왕령은 정확히는 부부능이다. 왕이 먼저 죽어 묻혔고 왕비는 나중에 죽어 추가됐다. 이것이 왕이 죽었을 때 묘권 배치 양상이다. 역시 묘권은 철저히 왕 중심이다. 왜 두 사람은 머리를 남쪽에 두었고 부부 위치는 바뀌었는가. 이것이 나로선 체증이었다. 이걸 해결한.. 2021. 3. 26.
심사자를 엿먹인 수정후 게재 무령왕릉 묘권의 '大墓'와 관련해 내가 제출한 논문심사 보고서가 나한테 들어왔다. 결론을 요약하면 '수정후 게재'였다. 세 사람 중 한 사람은 수정없이 게재였고 다른 한 사람도 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한데 마지막 한 사람이 수정후 게재 의견을 낸 것이다. 그가 문제삼은 대목은 이랬다. 무령왕령 묘권에 보이는 구절 중 '登冠大墓'라는 말이 보이니 나는 이 구절의 '등관'은 지명이며 그것이 곧 백제 당시 지금의 공주 송산리 고분군을 지칭하는 명칭으로 보았던 것이다. 이에 따른다면 무령왕과 무령왕비가 죽어 3년상을 지낸 다음 그것을 등관이라는 백제 왕가의 공동묘역에 안치했다는 뜻이 된다. '등관'이 지명이라는 주장은 이미 무령왕릉 발견 직후 청명 선생이 제기한 적이 있지만, 이후 아무도 거들떠 보지를 .. 2020.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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