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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7월, 발견 개봉 당시 무령왕릉 대강 유물배치 양상이다.
대강이라 하는 까닭은 정확성을 담보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하도 개판으로 발굴해서다.
다만 한 가지만큼은 적어도 위치관계 배치양상은 확실한데 무덤길 입구 진묘수랑 그 바로 앞쪽 묘권墓券 두 장 배치관계도다.
묘권 두 장은 무덤 안쪽에 있는 사람 기준으로 텍스트 방향을 설정했다.
다시 말해 저 문건은 무덤 주인공인 무령왕릉 부부가 화자話者이자 발신자다.
이 점 잊어서는 안된다.
이 무령왕령은 정확히는 부부능이다. 왕이 먼저 죽어 묻혔고 왕비는 나중에 죽어 추가됐다.
이것이 왕이 죽었을 때 묘권 배치 양상이다. 역시 묘권은 철저히 왕 중심이다.
왜 두 사람은 머리를 남쪽에 두었고 부부 위치는 바뀌었는가.
이것이 나로선 체증이었다.
이걸 해결한 직후인 2016년 3월 23일 나는 다음과 같이 썼다
보꾸와 열라리나 바까야로데싯따.
머리를 남쪽으로 둔 이유를 이제야 풀다니..
그 고구考究한 바는 졸저 《직설 무령왕릉》에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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