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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중3

문중은 어떻게 덩치를 키우는가 우리나라 각 문중은 어떤 조상에서계속 자손들이 번창해서 커지는 형태로 발전한 것이 아닌듯 하다.이건 어느 한 군데만 그런 것이 아니라대개 몸집이 아주 큰 문중일수록 이런 경우가 많은데 문중이 덩치를 키울 때 우리는 족보를 수단할 때 이름을 새로 넣어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보다 실제로 큰 기여를 하는 게 원래 서로 별개 문중이었던 사람들이 우리는 공통 조상으로부터 분지했다고 합의하고 같은 문중 우산 아래로 모이는 것이다. 우리나라 지금 수십만씩 문중 사람들을 거느린 경우대개 이렇게 여러 개 같은 성 문중이 동일 조상으로부터 갈려나갔다고 생각하고한 문중 별개의 파로 새로 정의하고 세계도를 만들면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따라서 문중 사람 숫자가 늘어나는 양상을 보면 원래 분적한 집안이 다시 원대 복귀하는 형.. 2025. 9. 29.
홍길동은 왜 항복하지 않는가 흔히 대동보를 통해 자기 문중을 보는 근대적 시각 때문에 문중의 구성원은 모두 평등하며 한 조상의 자손이라는 생각을 요즘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같은 문중 안에도 많은 다른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형성되며이에 따라 후손들 사이에 서로간에 층서를 형성하게 된다. 위로는 문중의 장손으로 사마시 대과 급제자를 대대로 낳는 집안이 있는가 하면서자도 아니고 얼자라 아예 자손 취급도 못받고 호적에 노비로 숨겨져 있는 자손도 나오게 된다. 따라서 조선후기에는 같은 집안이라 해도 위로는 명문 벌열부터 아래로는 노비까지 층서를 형성하며굳이 노비가 아니라 해도 적자와 서자, 장손과 지손간에 구별이 생겨 꼭대기에서 아래까지 층층으로 배열된 집단이 형성되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후기.. 2025. 9. 3.
두 가지 돌림자를 쓴 최언위崔彦撝의 네 아들 고려 혜종 원년(944)에 향년 77로 죽은 최언위崔彦撝의 아들로는 최광윤(崔光胤)·최행귀(崔行歸)·최광원(崔光遠)·최행종(崔行宗) 이 있다고 《고려사》 그의 열전에 밝혔다. 네 형제 중 각각 둘이가 다른 돌림자를 쓴다. 내 짐작대로라면 어머니가 각기 다를 가능성이 있다. (2016.1.10) *** 고려 초기만 해도 항렬자 사용이 두드러지는 편은 아니다. 저보다 대략 백년이 지난 김부식 시대가 되면 항렬자 사용이 빈출한다. 항렬은 문중의 등장과 밀접하다. 물론 조선시대 개념으로 그것을 곧이곧대로 적용할 순 없다. 요즘 보다 고려시대는 개명이 더 잦다. 따라서 최언위 네 아들도 그런 나중의 개명에 따라 우연히 저리 되었을 수가 있다. 한데 그리 보기엔 너무 공교롭다. 두 아들이 光, 다른 두 아들이 行이.. 2020.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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