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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질병, 그리고 역사/노년의 연구

홍길동은 왜 항복하지 않는가

by 신동훈 識 2025.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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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대동보를 통해 자기 문중을 보는 근대적 시각 때문에 

문중의 구성원은 모두 평등하며 한 조상의 자손이라는 생각을 요즘은 누구나 한다. 

하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그렇지 않았다.

같은 문중 안에도 많은 다른 경제적 사회적 상황이 형성되며

이에 따라 후손들 사이에 서로간에 층서를 형성하게 된다. 

위로는 문중의 장손으로 사마시 대과 급제자를 대대로 낳는 집안이 있는가 하면

서자도 아니고 얼자라 아예 자손 취급도 못받고 

호적에 노비로 숨겨져 있는 자손도 나오게 된다. 

따라서 조선후기에는 같은 집안이라 해도 위로는 명문 벌열부터 

아래로는 노비까지 층서를 형성하며

굳이 노비가 아니라 해도 적자와 서자, 

장손과 지손간에 구별이 생겨 

꼭대기에서 아래까지 층층으로 배열된 집단이 형성되니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 후기의 "문중" 혹은 "집안"이다. 

흔히 서자 금고를 나라가 시켜서 그랬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최근 알려진 바와 같이 서자 금고는 태종이 처음 명령한 게 아니다. 

그 이전 고려시대에도 서얼 금고는 있었고 그 기원은 더 소급될 가능성도 있는데 

오히려 조선전기 서얼에 대한 차별은 이전시대보다 경감된 것으로 안다. 

조선시대에 서자 금고, 서자에 대한 차별을 추동한 이들은 

나랏님이 아니라 바로 적자들이었다. 

쇄미록을 보면 이미 공고된 과거 장원이 

서자 출신이라 하여 파방되었다는 뜬소문을 적는데 

그야말로 은근히 그런 파방을 기대하는 듯한 뉘앙스도 풍긴다. 

서자가 과거에 참여하여 함께 시험을 보고 그 안에서 출신자가 나오면, 

그만큼 적자들은 불리한 위치에 처할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적자들은 지손에 대해서, 

혹은 서자들에 대해서 항상 경계의 눈을 던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홍길동이 왜 항복하려다 말고 구질 구질하게 자꾸 반복하여 장난을 치겠는가. 

나라에서 자기를 잡으러 적자인 형을 내려 보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아버지가 계속 나서서 읍소했다면, 

효자인 홍길동은 알아서 항복했으리로되, 

그 형을 내려 보내 잡아오게 한 것이 홍길동을 끝내 반복무상하게 만든 이유가 될 것이다. 

조선시대의 문중? 

우리가 아는 그런 문중과는 완전히 다르다. 

지금 문중은 서로 간에 아무런 경제적 이해관계가 없는 남남들이 모여 

같은 조상 후예라는 것만으로 교류하는 일종의 동호회인 셈이고, 

조선후기의 문중은 이해관계가 서로간에 첨예하게 대립하고 

그 안에는 여러 사회적 신분이 교차하여 갈등하는

멜팅폿이었다는 말이다. 

흔히 어떤 유명한 집안을 자신의 관향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도 덩달아 그런 양반 집이라고 순순히 생각하는 경우를 보는데, 

정작 그안에는 정말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다고 봐도 되겠다. 

이러한 이해관계가 모두 해소되고 동호회로 새 출발한 것이 지금의 각 문중 대동화수회다. 

조선시대 문중과는 아예 기원 자체가 다르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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